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일어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로 아파트 주민들의 안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기차는 화재 시 ‘열폭주’로 가뜩이나 진압이 어려운데, 지하주차장은 소방차와 대형 소방장비 진입이 어렵고 유독가스 배출도 어려운 밀폐공간인 탓이다. 특히 최근 부동산 시장을 주도하는 신축 아파트들은 주차장을 전면 지하화한 경우가 많아 불안이 더 커지고 있다.
4일 한국화재보험협회 등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옥외에 전기차 충전 시설을 마련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 전문가들은 안전 관점에서 전기차 충전 시설을 설치하기에 합당한 곳으로는 ‘옥외→별도 충전전용 건물→주차전용 건물 옥상→건물 내(지상)→건물 내(지하)’ 순으로 보고 있다.
실제 이번 화재 사고 당시 불을 끄는 데 8시간 이상이 소요됐는데, 지하주차장 특성이 이를 더욱 어렵게 했다. 전기차 화재는 차량을 통째로 담글 수 있는 이동식 수조 설비가 필요한데 지하주차장은 대형 장비 반입이 어렵다. 또 화재 시 발생하는 유독가스 배출이 어렵고 소방차 진입 역시 쉽지 않다.
이에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주차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경기도 안양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지하주차장 전기차 출입을 금지합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이 걸렸다. 지하주차장을 이용한 전기차에 경고장까지 붙이는 사례도 있다. 이번 화재 직후에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전기차 지하 주차를 금지해야 한다는 게시글이 잇따르고, 일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는 관련 안건이 다뤄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신축 아파트 주민들의 불안은 더 높아지고 있다. 최근 ‘얼죽신’(얼어죽어도 신축)이 대세일 만큼 수요가 높지만 신축 아파트 대부분이 미관상 이유나 보행자 안전, 주차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지상주차장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을 막으면 전기차 차주들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 전기차업계 한 관계자는 “신축 아파트 단지는 아파트 주차장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생긴다”고 지적했다.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우려가 커지면서 관련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 5월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대응 연구 보고회’를 개최했다. LH의 연구 용역을 진행한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은 상부 스프링클러만 제대로 작동하면 인접 차량으로의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는 실증 연구 결과를 내놨다.
다만 당시 강윤진 전국대학소방학과교수협의회장은 “현실에선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경환 한국소방기술사회장도 “실험은 화재의 옆차량 확산에 초점을 뒀지만 소방관 입장에서의 완전한 진압, 제어의 관점 등 좀 더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가 적용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공동주택 현실 등을 감안했을 때 실외 공간에 전기차 충전 시설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해결 과제다. 마땅한 부지를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전기선을 인입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박장우 아주자동차대 미래공학부 교수는 “야외에 충전 시설을 설치하려면 공간, 배전 가능한 환경, 비용 처리 문제 등이 해결돼야 한다”며 “국내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중혁 문수정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