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만 주는 일이 사육의 전부인 듯했던 말에게도 ‘생애 주기 복지’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망아지 때부터 사람과 친해질 수 있도록 교감하는 활동인 ‘순치’를 하는 일이 일반화하고 있다. 경주마를 은퇴하면 승용마로 ‘전직’을 돕는 프로그램도 만들어졌다. 학대받는 말을 구조하는 체계 역시 갖춰졌다. 산업용으로 활용되는 동물에 대한 복지가 여론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덕분이다.
5일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말 복지를 전담하는 기관인 말복지센터가 설립한 것은 불과 2년 전인 2022년이다. 김진갑 마사회 말복지센터장은 “반려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은 오래됐지만 산업용 동물에 대한 복지 개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말 복지는 급속도로 향상되고 있다. 생후 3일 이내 망아지 때부터 사람이 끌어안아 주는 행위 등 체계적인 순치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도입됐다. 마사회는 올해 1억2000만원을 투입해 70마리의 순치를 지원할 방침이다.
순치는 경주마로 활약한 뒤 은퇴하는 말들이 승마용으로 쓰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 과정 역시 복지 차원의 6개월 훈련이 지원된다. 경주마들의 습성상 빨리 달리려는 욕구가 강한 편인데, 이 욕구를 줄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일종의 직업훈련”이라며 “순치를 받은 말들은 사람과 환경에 대한 경계가 얕아 승용마 전환도 상대적으로 쉽다”고 말했다.
긴급 구호 체계가 갖춰진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2015년 발생한 경주 꽃마차 말 학대 사건과 같은 학대행위가 발생하면 구조 및 보호를 할 수 있는 체계가 도입됐다. 이 외에도 부상 경주마 재활지원 등 주기별로 필요한 복지 체계들이 가동되고 있다. 각종 체계의 재원은 경마 관계자와 마사회 등의 기부금으로 마련했다. 센터 출범 이후 모인 기금은 29억원에 육박한다.
말 복지 체계 구축이 속도를 낼 수 있었던 데는 2021년 불거진 말 학대 사태의 영향이 적지 않다. 그해 11월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현장에서 발생한 말 학대 행위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극 중 이성계가 낙마하는 장면을 위해 앞다리가 묶인 채 달리다 고꾸라진 말이 5일 후 폐사했다. 촬영을 감행한 제작진 3명은 지난 1월 동물보호법 위반이 인정돼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 센터장은 “과거 관행이 불러온 참사”라며 “지금은 이런 일이 없도록 센터와 촬영진 간 협업 체계도 구축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