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우리는 모두 거름 주는 사람입니다

입력 2024-08-06 03:03

오늘 함께 나눌 본문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종종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듣는 이로 하여금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비유의 특징은 만들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간 장소 등장인물 등 모든 것에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유에서 표현하지 않은 부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비유의 시작은 5절 말씀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는데 3년 동안 열매를 수확하지 못해 잘라 버리기로 합니다. 이때 포도원지기가 둘레를 파고 거름을 줄 테니 한 해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그래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때 베어버리자는 겁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나의 의문이 듭니다. 왜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느냐입니다. 포도원지기가 따로 있다는 것은 개인이 소비할 수 있는 포도원은 아닐 것입니다.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포도원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포도원에 뜬금없이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해석은 포도원 주인이 무화과를 얻기 위해서 남은 공간에 심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열매입니다. 열매를 얻기 위해 심었는데 3년 동안 열매를 얻지 못했습니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지 않으면 수리를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수리가 불가능하다면 처분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모든 것은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이미 가치가 사라진 것입니다. 하지만 과실나무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아직 가치가 사라졌다고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무화과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지기는 마지막으로 한 해만 더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너무 쉽게 판단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침없는 말을 내뱉는 분들의 음성이 떠올랐습니다. “누구누구는 안돼. 저 사람이 회개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이 말은 비단 교회 밖에서만 들려지는 음성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들려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나는 진심으로 회개하였는가.’ 누군가를 정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열매 맺지 못했다면 그 어떤 것보다 먼저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는 일이 우선돼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베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은 우리 영역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베어버릴지 말지도 우리가 판단할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스스로 거름이 부족하다면 그 부족함을 채워야 하고 누군가 거름이 부족하다면 그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포도원지기는 한 해만 더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기회의 시간이 주어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아직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했어도 열매 맺을 시간을 허락받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거름 주는 일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거름 주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박재원 사제(대한성공회 전주교회)

◇박재원 사제는 전주교회 관할사제이며 현재 전라교무구 총사제, 전주나눔의집 지도사제로 시무하고 있습니다. 교구에서는 재산관리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전국 상임위원과 교구 상임위원으로도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