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그치고 맑은 날이 이어진다. 장마는 여름의 기상 현상이지만 한국어는 장마 곁에 계절을 뜻하는 접미어 ‘철’을 붙여 장마를 하나의 작은 계절로 간주한다. 그래서인지 장마가 여름에 속한다기보다 장마라는 껍질이 여름을 한 겹 덮고 있는 것 같다.
어느덧 8월이다. 계절의 변화라는 것이 매번 놀랍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영원할 것 같던 더위를 견디다 보면 추운 날씨가 어느새 도래하며 한 해가 간다. 여름의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 아침 현관문을 열었을 때 코끝을 스치는 찬 공기의 촉감에 놀라게 될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모든 풍경들 가운데 계절의 변화는 잔인할 만큼 확실하고 그것은 마치 모든 이에게 죽음이 찾아오는 것처럼 공평하다. 기후위기로 인해 2080년부터 지구는 인류가 살기 어려운 날씨가 될 것이라고 한다.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해나가고 있지만 겪어보지 않은 세계의 모습이 아직은 상상하기 어렵다.
장마철의 습도 속에서 괴로워하다 마주한 맑은 하늘과 구름이 아름다워 요 며칠 오래 걸었다. 앞으로 몇 번이나 이렇게 찬란한 하늘을 마주할 수 있을까. 삶이라는 것이 너무나 유한하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흐린 날씨조차 제대로 느끼지 않고 흘려보내기 어렵다. 특히 요즘처럼 좋은 날씨 속에서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날씨를 더는 인간의 몸으로 감각할 수 없는 날이 찾아온다는 것은 봄이 가면 여름이 온다는 사실만큼이나 분명하다.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의 얼굴 하나씩 잃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우리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우리 자신이 계절의 흐름에 속하게 될 것이다. 나와 가족과 친구가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 몸으로 날씨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 역시 아름다운 일일 테지만 겪어보지 않은 날씨처럼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간의 몸을 가진 지금 하루하루의 날씨를 아끼며 살아가기로 한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