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2법 존폐, 공론화 거쳐 사회적 합의 끌어내야”

입력 2024-08-02 02:11
게티이미지뱅크

시행 만 4년이 지난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이 존폐 기로에 섰다. 서울 주택 시장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치솟고 매매 가격이 꿈틀대자 대통령실은 “임대차 2법 폐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는 상황에서 임대차 2법이 전셋값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니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 개정을 위해선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를 넘어야 한다. 원상복구 과정에서 전월세 시장이 다시 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국민일보는 부동산 전문가 6인에게 임대차 2법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들은 “폐지든 유지든,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토교통부와 법무부는 임대차 2법의 폐지를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전월세 임차인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거주 기간을 최대 4년(기존 2년에 2년 연장 가능)으로 늘릴 수 있다. 연장 시 임대료 상승률도 최대 5%로 제한된다. 이를 법이 시행된 2020년 7월 이전으로 되돌린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1일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없애고 과거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임대차 2법 폐지 방침은 최근 수도권 전셋값 상승 흐름과 맞물려 찬반 논란을 부른다. 정부는 계약 시점에 4년 치 전셋값을 한꺼번에 올려 받으려는 수요가 가격 상승세를 키운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임대차 2법 폐지로 가뜩이나 들썩이는 전월세 시장이 더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공급 물량이 부족해 전세 상승 우려가 큰 상황에서 왜 폐지를 해야 하는지 명분이 부족하다”며 “세입자 입장에선 2년 더 계약을 연장하고 5%만 증액하는 것이 유리한데, 이걸 폐지하겠다는 신호를 주면 시장 불안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지난달 둘째 주(15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지수는 89.6으로 2023년 5월(86.5) 이후 61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임대차 2법을 유지하되 부작용은 일부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에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나 실거주 여부를 놓고 갈등을 벌이다 소송으로 번지는 사태를 줄이는 방향의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임대차 2법의 기본 골격은 유지하는 게 맞는다”면서도 “법이 너무 급하게 만들어지면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부작용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손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도 “중고등학교 학제에 맞춰 계약갱신청구권 기간을 ‘2+1년’로 바꾸거나, 전월세 인상 폭을 일정 금액까지만 묶고 나머지는 시장 자율에 맡기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서울 강남 등의 ‘고가 전세’에 대해선 임대차 2법 적용 제외 등의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 늦기 전에 임대차 2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가격 자율성 등 시장 기능을 훼손하는 부작용이 더 컸다”며 “부동산 가격 폭등 장세 같은 긴급 상황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시장 기능을 다시 회복하는 방향이 맞는다”고 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계약 기간을 4년으로 늘리면 세입자 거주 환경이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시장의 전세 물량이 장기간 잠겨 오히려 세입자에 불이익이 된다”고 했다.

관건은 거대 야당의 입장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인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자신의 SNS에 “임대차 2법 폐지가 국민의 의사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국민의 삶과 관련된 정책일수록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필수라고 제언한다. 고 원장은 “한국 사회에서 임대차는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라며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개선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도 “폐지든 유지든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론을 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