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부러진 세계 1위 탁구채

입력 2024-08-02 00:40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vs 가려야 한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논쟁만큼이나 동서고금을 통틀어 끊이지 않는 논쟁거리 중 하나다.

전자는 당나라 태종 때 3대 명필 중 한 명인 구양순(557~641)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글씨 쓸 때 꽤 붓과 먹을 가리는 저수량이 우세남에게 자신과 구양순의 실력 비교를 문의했다. 이에 우세남은 “구양순은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고 마음대로 글씨를 쓸 수 있다. 그대는 아무래도 구양순을 따르지 못할 것”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정작 구양순의 롤 모델이었던 서성(書聖) 왕희지(303~361)는 붓을 가렸던 거로 보인다. ‘서법요록(書法要錄)’은 ‘왕희지가 비단 종이와 쥐 수염 털로 만든 붓으로 난정집의 서문을 썼다’고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주현종(周顯宗)의 ‘논서(論書)’는 아예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통설이라고 할 수 없다”고 부정한다. 행서와 초서를 제외하고 해서 전서 예서를 쓸 때는 붓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붓을 가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력 연마만큼이나 환경에 맞는 장비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파리올림픽 탁구 혼합 복식에서 금메달을 딴 세계 1위 왕추친이 그제 단식 32강전에서 충격의 패배를 당했다. 중국 팬들은 복식전에서 북한팀을 꺾고 우승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달려든 기자들 때문에 그의 탁구채가 부러져 실력 발휘를 못 했다며 분노했다. 부러진 채는 그가 결승전 때만 사용할 만큼 애지중지해 온 명품이다. 그의 이름을 딴 ‘Q968 왕추친’ 라켓으로 100만원 가까이 호가한다. 중국 시나스포츠는 예비 라켓으로 경기하는 왕추친에 대해 “라켓을 바꾼 뒤 경기가 잘 안 되는 것 같았다”며 장비 탓에 힘을 실었다. 라켓이 부러지자 기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던 왕추친은 “내가 경기를 잘하지 못했다”고 의연한 태도를 보이려 애쓰는 눈치였다. 요새 골프 등 스포츠 아마추어들의 ‘실력은 장비발’이라는 유행어에 멘털 관리도 추가해야 할 듯싶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