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송정 해수욕장은 광안리 해운대 다대포와 달리 서핑 성지로 불린다. 국제서핑대회의 무대가 되는 송정 해수욕장은 250m에 달하는 서핑 구간을 자랑한다. 지난 1일 오전 5시 30분, 막 동이 튼 해변을 등지고 한 서핑숍에 들어서자 자신을 오늘의 강사라고 소개한 이유진(20)씨가 서핑 수트를 건네며 말했다. “송정 해수욕장은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도 얕아서 초·중급 서퍼들에게는 최고로 꼽히죠.”
익숙하게 서핑 전용 앱을 켜고 파도예보를 살피던 이씨는 “연습하기 딱 좋은 친구(파도)들이 많겠다”며 기자와 함께 바다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해수욕장엔 이미 서프보드에 몸을 맡긴 이들이 파도를 타고 있었다.
허리 높이의 수심에서 패들링(엎드린 채 양손으로 물을 젓는 동작) 푸시업(상체 일으키기) 스탠드업(일어서기) 등 기본 동작을 알려주던 그는 “바다에서 파도를 마주할 때마다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늘 좋은 파도가 찾아오진 않아요. 조급해하지 않고 내게 어울리는 친구를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죠. 어느 날은 잔잔했다가 때로는 높은 파도가 들이닥치기도 해요. 인간적인 힘만으로 파도에 맞서기보다 파도를 지혜롭게 넘어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그때 서프보드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죠. 어려움을 겪을 때 다가와 주시는 하나님처럼요(웃음).”
그가 근무하는 ‘바인(vine) 서프’에는 10여명의 청년 서핑 강사들이 있다. 운영 주체는 부산 포도나무교회(김명규 목사)이고 강사들 대부분 이 교회 성도들이다. 이씨도 초등학교 6학년 때 강사로 만난 김명규(53) 목사와 교회 언니 오빠들에게 서핑을 배우다 성도가 됐다. 이씨는 “송정 해수욕장 근처 20곳이 넘는 서핑숍이 성업 중이지만 단골처럼 ‘바인 서프’를 찾는 이들은 청년들이 뿜어내는 건강한 에너지를 단골의 이유로 꼽는다”고 소개했다.
문턱 없는 공동체를 그리다
교회가 서핑숍을 운영하게 된 배경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던 김 목사가 라브리 공동체(프랑스어로 ‘쉼터’를 뜻하는 복음주의 기독교 공동체)처럼 사역하는 교회와 상담, 모임, 커피 판매 등 경계 없이 운영하는 ‘바인(vine)’이란 이름의 카페를 경험하게 되면서다.
“가족, 공동체 일원들과 함께 시간과 신앙을 나누는 게 중요한 예배임을 깨달았습니다. 회의하느라, 더 많은 예배를 준비하느라 교제 나누는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게 포도나무 되어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과 연결돼있는 포도나무 가지 같은 성도들의 모습으로 느껴진 것이지요.”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온 김 목사는 아내 유진영(49) 사모와 함께 부경대 앞에서 카페 교회를 열었다. 지금은 익숙한 모습이지만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당시엔 주중에 카페로 운영하고 주일엔 예배 공간으로 바뀌는 교회라는 것만으로 “이단 아니냐”며 눈총을 받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교회가 문턱을 낮추고 기독교 본질을 뿜어내야 한다는 지향점은 놓지 않았다.
지하 개척교회서 멀티 공간으로 확장
얼마 후 현재 위치인 부산지하철 2호선 수영역 인근 지하 공간을 임대해 다시 개척길에 올랐다. 그러곤 일하는 목회자로서 영어 강습을 하며 조금씩 재정이 준비 되는 대로 공간을 넓혀 갔다. 그렇게 작은 예배 처소뿐이었던 교회는 서핑을 콘셉트로 한 1층 바인 카페, 남녀노소 누구나 입주할 수 있는 셰어하우스(2~3층), 지상에서 서핑을 연습할 수 있는 ‘카버 보드’ 훈련장(지하 1층) 등으로 확장됐다. 2년 전부턴 송정 해수욕장 앞에 본격적으로 ‘바인 서프’를 운영하며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교회가 카페와 서핑숍, 연습장, 셰어 하우스를 함께 운영하는 것의 본질에 대해 김 목사는 “복음을 모르는 젊은 세대와의 열린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유 사모는 “비슷하지만 뭔가 다른 에너지를 느끼면서 호기심이 신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세상의 방탕한 즐거움과는 다른 차별화 된 재미를 경험하게 하면서 건강한 청년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건강한 문화로 복음의 파도 만든다
바인 서프의 회원들은 1~2주에 한 번씩 모여서 파티를 하면서 건강한 문화를 접한다. 흥청망청 술을 마시지 않아도 건전하게 게임도 하고 대화를 나누며 삶을 공유한다. 주일 예배 후 점심 식사 교제를 마치고 나면 성도들은 평상복을 벗고 서핑 수트로 갈아입는다. 파도를 타며 서프보드 위에서 셀 모임과 심방이 펼쳐지는 셈이다.
오는 9월에 열리는 서핑 페스티벌에선 성도들과 ‘해양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이 또한 ‘바인의 서퍼’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DNA다. 김 목사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소망을 전했다.
“모든 가치의 뿌리는 예수님입니다. 그 뿌리를 각자 자신의 개성을 갖고 세상 가운데 또 하나의 포도나무 가지로 보여주며 그 모습 자체로 복음을 전하는 것. 그것이 이 교회를 시작할 때의 꿈이자 의미 있는 사회 개혁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부산=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