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 A씨(23)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A씨는 부모님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중학교 2학년 때 보육원에 들어갔고, 특성화 고등학교에 입학해 회계와 무역을 공부했다. A씨는 “빨리 취업해 돈을 벌 생각으로 특성화고에 입학했는데, 사회 진출 직전인 고3 때쯤 회계, 무역이 적성에 도저히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A씨가 길을 잃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A씨는 “학창시절 진로, 적성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며 “당장 생계를 꾸려가야 해 남들처럼 (다양한 선택지 속에) 꿈을 찾아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립준비청년들은 생계 문제 때문에 성인이 되자마자 취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른 나이에 자기 적성을 찾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A씨는 대학에서 실내건축을 전공하고 지금은 인테리어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A씨 마음 한구석엔 불안감이 남아있다. A씨는 “내년이면 자립준비 기간이 종료돼 자립수당 월 50만원 등 자립준비 지원이 끊긴다”며 “동료 자립준비청년들과 (의지하며) 함께 살고 있는 자립생활관에서도 독립할 예정이라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A씨 사례는 자립준비청년을 돕는 지원이 자립준비 기간(만 18~22세) 이전과 이후까지 확대돼야 함을 잘 보여준다. 서울시 기준, 자립준비 기간엔 자립정착금(2000만원), 자립수당(월 50만원), 취업 준비 지원금(연 120만원) 등 지원이 적지 않다. 하지만 보호 아동기(만 18세 미만)와 자립 청년기(만 23세 이후)엔 도움이 없다시피 하다.
자립준비 기간 전부터 ‘꿈 찾기’ 돕는다
서울시는 자립준비 기간 전·후에 주목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이 홀로서기에 성공하려면, 자립준비기간 전·후를 아울러 그들을 촘촘히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달 24일 발표된 ‘자립준비청년 자립지원 마스터플랜’엔 그 계획이 담겼다. 시는 마스터플랜을 바탕으로 4대 분야 12개 핵심 과제를 구성해, 5년간 1065억원을 투입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자립준비청년은 1509명이다.
시는 먼저, 자립준비청년 이전인 보호 아동기부터 이들을 돕는 안을 마련했다. 특히 최씨처럼 자립준비청년들이 ‘꿈’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초등학생 때부터 전문 적성검사를 받을 수 있게 지원하기로 했다. 적성검사 결과 예체능 분야에 가능성을 보이면, 경제적 어려움 없이 특기를 갈고닦을 수 있도록 월 30만원을 지급한다. ‘일대일 진로 컨설팅’과 관심 분야 선배들을 만나 조언을 듣는 멘토 특강도 진행한다.
보호 아동들이 다른 학생들에 뒤처지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끔 보호 아동 양육시설에 시의 교육 플랫폼 ‘서울런’도 공급한다. 보호 아동들이 무료로 양질의 사설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고, 교육 멘토링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진로 찾기와 공부만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보호 아동 때부터 자립을 실질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보호 아동에게 2028년까지 1인 1실을 제공한다. 요리·공과금 납부 등 일상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자립준비 기간 이후로도 지원은 이어진다. 다른 청년과 달리 ‘기댈 언덕’이 없는 자립 청년들에게 기댈 곳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시는 민간 후원금 등으로 2028년까지 ‘SOS 자금’ 2억원을 조성한다. 긴급한 위기에 놓인 만 39세 이하 자립 청년에게 SOS 자금으로 1인당 최대 500만원을 지원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
시는 또 자립준비 기간 종료 후 사회적 관계 단절로 고립된 자립 청년을 돕는다. 자조 모임 구성을 지원하고, 민관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도움이 필요한 자립 청년에게 필요한 지원을 연계한다. A씨는 “소규모 양육시설에서 자란 자립 청년은 또래와 섞일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자조 모임 등은 자립 청년들이 사회관계망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 주거비·보험비 지원
자립준비 기간 전·후 지원뿐만 아니라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지원도 강화한다. 시는 특히 주거 지원책 마련에 신경을 썼다. 내년부터 자립준비청년에게 민간 전·월세비, 기숙사비, 보증금 대출이자 등을 월 20만원까지 지원한다. 시 여성가족재단이 지난해 자립준비청년 등 55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35.9%가 주거 불안을 겪고 있다고 답한 데 따른 정책이다.
시는 또 자립준비청년들의 단체 상해보험 신규 가입을 지원한다. 병원비 부담 때문에 병원 방문을 꺼리는 자립준비청년들이 많은 것을 고려했다. 병원에 동행해 줄 사람이 없는 자립준비청년을 위해 청년 전담 동행 매니저가 병원을 함께 가주는 ‘도어 투 도어’ 서비스도 시작한다.
취업 지원도 확대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구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서울형 강소기업’을 통해 직무교육과 인턴 경험을 제공한다. 취업에 성공하면 ‘새출발 응원금’ 50만원을 지원한다.
이번 마스터플랜은 자립준비 기간 전·후까지 지원 시점을 넓혔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홍나미 수원과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립준비 기간 5년 안에 취업 등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지원이 연속성을 갖게 돼 자립준비청년이 어려움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김선순 시 여성가족실장은 “서울이 마스터플랜을 촘촘하게 잘 시행하면 정책이 각 시·도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며 “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용헌 기자 y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