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것보다 중요한 건 보람 있는 데 돈 쓰는 것”

입력 2024-08-01 03:02
최근 서울 동대문구 진흥문화 사옥에서 만난 박경진 장로. 박 장로는 “신앙이 없었다면 나눔의 삶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달력 제조업체 진흥문화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사무실 책상에 놓인 주보였다. 주보는 이 회사 직원들이 매주 월요일 오전 8시30분에 드리는 예배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첫 장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라는 말씀이, 그다음 페이지엔 예배 순서 등이 적혀 있었고 뒷장엔 ‘인사발령’ ‘휴가 일정’ ‘중보기도’ 같은 코너가 마련돼 있었다. 최근 진흥문화를 찾은 것은 이 회사 설립자인 박경진(84·서울 꽃재교회) 장로를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그는 주보를 엮어 만든 단행본들을 보여주면서 “이게 곧 우리 회사의 역사”라고 소개했다.

박 장로는 꾸준히 나눔의 뜻을 실천한 기업가로 유명하다. 사업을 통해 일군 부를 지속적으로 세상에 흘려보냈다. 1996년부터 개최한 해외 입양아 모국 초청 행사가 대표적이다. 팬데믹 이전까지 매년 평균 20명 안팎의 입양아가 박 장로 덕분에 한국을 찾았다. 박 장로는 진흥장학재단을 세워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 14년간 400명 넘는 학생이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금 누적액은 거의 10억원에 달한다.

박 장로가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한 것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51년이었다. 당시 동네 초등학교엔 피란민이 모여들곤 했는데, 어느 날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게 됐다. 당시 11살이던 박 장로는 호기심이 생겼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즈음 유년기를 보낸 대다수 한국인이 그렇듯 그의 인생도 순탄치 않았다. 항상 끼니를 걱정했다. 69년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에 상경한 뒤에도 가난의 터널은 길기만 했다. 10년간 25번이나 이사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다. 76년 서울 중구 을지로 방산시장에 진흥문화를 설립한 뒤에도 생활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는데 80년대가 되면서 서서히 사업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당시 성공의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은 그때까지 한국에 거의 없던 성화 캘린더였다.

“진흥문화는 성화 캘린더의 원조이자 독보적인 회사였어요. 사업이 잘되면서 달력 업자들 사이에 소문이 났어요. 50㏄ 오토바이 타고 다니던 박경진이 성화 달력으로 신설동에 빌딩을 올렸다고(웃음). 그러면서 저를 따라 성화 캘린더를 만드는 사람도 늘어났죠.”

박 장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며 “돈 버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에 돈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2010년 펴낸 자서전 ‘오직 감사’를 건넸다. 자서전 첫머리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예수를 믿으면 인생의 역전을 경험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감사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글·사진=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