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기억하라

입력 2024-08-03 03:14

어느 날 아내의 어깨가 축 늘어져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고향 집에 보관했던 학창 시절 일기장을 어머니께서 버린 겁니다. 좋은 추억뿐만 아니라 슬프고 상처 되는 이야기들까지도 아내에게는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함’이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소중한 추억을 더 이상 소환할 수 없는 아쉬움에 상실감마저 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영적인 상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마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전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누구였는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들을 구원하신 분이 누구인지 알려 주십니다.(출 20:2)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은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길 원하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 은혜를 잊지 말 것을 자신의 영혼에 촉구합니다. 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많은 은혜를 부어주신 분이었습니다. 소년 시절 골리앗과 목숨을 건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셨고 사울 왕에게 쫓겨 그가 바로 코앞까지 닥쳤을 때도 그의 목숨을 지켜주셨습니다. 심지어는 밧세바를 범한 것도 모자라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죽음으로 몰아간 다윗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깊이와 넓이의 사랑이었음을 다윗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은혜를 잊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인생을 자세히 보면 그의 삶이 과연 은혜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은 어려움도 겪습니다. 사울 왕을 피해 살기 위해 달아난 곳은 매우 척박한 광야였습니다. 그는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침을 흘리며 미친 척 해야 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들 암논과 다말 사건은 다윗에게 큰 고통을 주었고 또 다른 아들 압살롬의 반역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고통 속에서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잊어버릴까 하는 마음에 시편을 기록하며 자신의 영혼을 향해 그 은혜를 잊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

2절에서 ‘잊지 말라’는 말은 미완료 시제입니다. 지속적 반복적으로 또 미래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 또 미래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하시며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성도는 고난에는 강하고 풍요에는 약하다고 합니다. 풍요로울 때 인간은 망각이라는 고질적인 병에 잠식당할 때가 많습니다. 사탄은 풍요라는 사탕 속에 망각이라는 독을 묻혀놓은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이 세대가 만들어 놓은 기준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재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에게도 머뭇거림 없이 들어오시는 분이십니다. 척박한 광야를 지날 때나 풍요롭고 넉넉할 때도 우리를 인도해 내신 하나님은 내 삶에서 한 번도 섭리의 펜을 놓은 적이 없는 분이십니다. 다윗처럼 삶의 전 과정을 통과한 하나님 은혜에 끝없이 반응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뿐만 아니라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여전히 찬양하는 모든 성도님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형동 말씀심는교회 목사

◇경기도 하남 말씀심는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 소속입니다. 이형동 목사는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자 네 아이의 아버지인 이 목사는 303비전성경암송학교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책 ‘말씀 심는 아빠’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