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큰 죄에 빠진 나를’ 295장(통41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1장 2~8절
말씀 : 하나님께서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실 때 이사야서와 말라기서에서 예언하듯 세례자 요한을 택하셔서 주님의 길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세례 요한이었을까요. 또한 왜 광야에서 외치도록 하셨을까요.
먼저 세례 요한의 외형적인 모습을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에는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구약에도 나와 있습니다. 열왕기하 1장 8절이 말씀하듯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띤 엘리야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엘리야였을까요.
말라기 4장 5절 말씀에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 400년 정도 하나님의 침묵이 흐르게 됐고 이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리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편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사야서 말씀대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됐습니다. 내가 누구이며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그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내 뒤에 오시는 분,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역할이 내 사명’이라는 자기 한계와 지켜야 할 선을 분명히 알고 있으며 내 뒤에 오시는 분의 신발 끈을 푸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분명한 자기 인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겸손이 시작됩니다. 나의 정체성을 알며 내가 누구인지를 깨달을 때 우린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겸손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왜 광야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좋은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아버지의 제사장직을 이어받아 성전에서 편안하게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운명을 타고난 그였지만 그는 편한 길 대신 광야로 나가 홀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과 그 공간을 사랑했습니다. 광야라고 하는 단어는 공간적 용어이면서 동시에 시간적 용어입니다. 광야의 시간과 광야의 공간, 그곳에서 세례 요한은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누구에게도 임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말씀이 이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혹시 광야의 빈들에 홀로 서 계십니까. 빈들에 섰던 세례 요한처럼 준비된 사람, 그래서 자신의 사명과 정체성을 알고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는 한 사람이 있을 때 결코 하나님의 나라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 믿음으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돼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이 시대의 세례 요한이 됩시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겸손하게 감당케 하옵소서. 광야의 시간을 보낼 때 주님과 교제함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만호 복된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