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 구절은 내 인생의 나침반이요 좌우명이 된 말씀이다. 내 초중학교 시절은 ‘경외(敬畏)의 씨가 발아(發芽)되지 않은 상태’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마음속엔 경외의 씨가 있었다. 교회 권사였던 외할머니의 기도가 있어서다.
어린 시절 하나님을 모르고 자란 나는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없이 교회를 다녔다. 당시 동네교회 전도대가 집 근처에 와 전도 찬송을 자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 찬송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골방으로 들어가 기도했다. 예수님의 재림 임박을 느낀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찬송을 들으니 신성한 것이 느껴졌다. 신성한 것은 심어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외할머니의 기도로 내 마음에 각인된 신앙의 씨앗이 찬송의 영향으로 꿈틀거린 건 아닌가 싶다.
나는 부산 서구 아미동에서 나고 자랐다. 동네 아이들과 같이 여름에 산고개 너머 감천 바닷가로 수영하러 자주 갔다. 초등학교 5학년인 12살 때 나는 여기서 익사 직전 구출 받은 기억이 있다. 지금은 화력발전소가 세워진 용굴은 바위로 이뤄져 놀기 참 좋았으나 수심이 깊었다. 여느 때처럼 수영하며 놀다 사촌 동생이 물에 빠졌다. 그를 건지려고 팔을 내밀었다가 나도 같이 빠졌다. 함께 허우적거리며 익사 직전까지 이르렀는데 그 순간 튜브를 메고 지나가던 어른이 튜브를 던져줬다. 그 튜브를 잡고 머리를 밖으로 내고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이어 사촌 동생도 구출됐다.
그 와중에 바닷물을 많이 들이킨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간 아팠다. 지나가던 어른이 돕지 않았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당시 상황을 회고할 때면 하나님 섭리를 느낀다. 나일강에 버려진 아기 모세가 바로의 공주에 의해 구출된 이야기가 떠오른다.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출 2:10)
당시엔 그저 운이 좋아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교회에 나가긴 했으나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없었다. 신앙이 좋은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내게 교회에 열심히 나가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은 내게 하나의 종교적 대상으로 다가왔다. 주일학교 예배에서도 아무런 은혜를 느끼지 못했다. 예배는 그저 하나의 종교적인 의식일 뿐이었다.
이제 팔순이 가까운 철든 눈으로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익사 직전 구출 받은 건 하나님의 말 없는 간섭이었다. 어린 나를 주님이 돌아보신 것이다. 이런 경험은 초등학교 5~6학년 시절에도 있었다. 성실했으나 반장감은 아니었던 나를 담임교사가 반장으로 임명했다. 더 똑똑한 아이들 가운데 부족한 자를 미쁘게 본 것이다.
토성초등학교와 경남중학교 시절 나는 하나님에 대한 아무런 의식이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미약한 나를 알고 긍휼을 베풀어 인도하셨다. 소년인 내가 미래의 위대한 인간상에 대한 상상력과 소명감을 갖도록 해주셨다. 또 주어진 과제와 일에 대한 성실함을 갖춰나가는 등 일반 은총도 베푸셨다.
약력=1946년생, 서울대 철학과 졸업,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대학원 신학박사, 숭실대 교목실장,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소장,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숭실대 초대 기독교학대학원 원장 역임. 현재 웨이크신학원 석좌교수, 숭실대 명예교수, 샬롬나비 상임대표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