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위메프 정산 대란 사태로 이커머스를 비롯한 각종 온라인 플랫폼이 정부의 ‘자율규제’라는 이름 아래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본잠식 상태인 두 기업이 판매대금을 다른 용도에 쓸 수 있던 배경엔 소비자 및 판매업체 보호 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허술한 법체계가 자리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보호 규정 강화보다 업계 자체 노력에 맡기는 자율규제 방식을 이어오다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2021년 1000억원대 선불충전금을 환불하지 못한 ‘머지포인트 사태’와 똑같은 사건이 다시 벌어진 원인엔 “규제 수단이 없다”며 소극적 자세로 일관한 정부의 관리·감독 기조가 자리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자율규제와 적절한 개입 사이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태를 지켜보다 문제가 터진 뒤 해결에 나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 당국은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티몬·위메프 사태 관련 보고서에서 “이커머스 업체의 소비자 보호책임 강화 등 제도 개선 방안 마련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6일까지 티몬·위메프 관련 환불 금액은 약 174억원이다. 환불을 기다리는 대기 금액은 626억원이 넘는다. 공정위와 금융감독원은 합동점검반을 꾸리고 “다른 이커머스 업계 동향도 점검하고 있다”고 했다.
이커머스가 60일 넘게 정산을 미뤄 판매업체가 피해를 입는 문제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도 거론됐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자율규제를 통해 연내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티몬·위메프의 정산 대란 사태가 불거지자 “민사상 채무불이행 문제”라고 했다. 대통령실이 나서자 뒤늦게 “소비자 보호에 나서겠다”고 했다. 금감원도 2022년부터 티몬·위메프의 자본잠식 상황을 파악했지만 업체 자율에 맡기는 경영개선협약(MOU)만 체결한 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는 “이번 사태는 당국이 이커머스 규제 공백을 방치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외면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자율규제는 기술 발전이 빠른 디지털·온라인 산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업계의 자정 노력에 먼저 맡기는 개념이다. 시장 변화를 일일이 규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공정거래나 소비자 피해 방지 등의 시장 생태계를 개별 업계와 기업이 자발적으로 조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처럼 기업이 내부 문제를 은폐할 경우 대규모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은 지난해 7월 보고서를 통해 “자율규제는 강제력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 위험 등을 초래하는 분야에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쓴 원수연 선임연구위원은 “소비자 피해 관련 원칙도 기업에 맡기는 것은 자율규제의 기본 취지와 다르다”며 “과도한 규제도 문제지만 자율 규제가 무(無)규제로 이어져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