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총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한 남기원(19)씨는 축구선수를 꿈꾸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공을 차던 그의 세상이 하루아침에 암흑 속으로 빠진 건 고등학교 축구부 입단을 앞둔 때였다.
그는 ‘레버씨 시신경 위축증(LHON)’으로 갑자기 실명하고 말았다. LHON은 18~30세 사이의 나이에 시신경 손상으로 양쪽 시력을 모두 잃는 유전 질환이다. 절망 속에서 남씨는 낙담하지 않았고 점자를 배워가며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30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남씨는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신학대 진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날 만남에는 이현서(21)씨와 최길라(21)씨도 동석했다. 이들도 모두 시각장애인으로 함께 신학의 길을 걷고 있다. 시각장애인이 된 이유도 각기 달랐다.
이씨는 신생아 때 눈에 종양이 생기면서 안구를 적출했다. 현재 이씨는 플라스틱으로 된 의안을 끼고 생활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희미한 빛조차 볼 수 없는 그지만 누구보다 손끝으로 ‘성경 읽기’에 진심이다.
장로회신학대 기독교교육과 3학년인 그는 장신대가 주최한 전국 청소년 성경 경시대회에서 1등을 한 뒤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 장애인 전형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경쟁해 대학에 입학한 그는 1학년 때 전액 장학금도 받았다. 장애인 스키·수영 선수로도 활약했던 최씨는 홍채가 없이 태어난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이씨의 한 학년 후배인 최씨는 찬양 사역자를 꿈꾸고 있다.
신학도가 되기 전 이들은 서울 종로구 서울맹학교를 함께 다녔던 동문이다.
이 학교 기독교 동아리에서 만나 신앙을 키운 이들을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본 건 애능중앙교회(장찬 목사) 다음세대 사역자인 양진철 목사다. 이날 이들을 인솔했던 양 목사는 “신학도가 된 이들은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복음을 전할 소중한 미래세대”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이들이 품은 비전은 다양했다.
이씨는 “성경 하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어떻게 하면 성경을 재밌고 자세히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남씨는 장애인 인식 개선과 비장애인 선교에도 열정이 있다. 그는 “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세상의 의를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내 삶의 목적이 하나님에 맞춰졌다”면서 “당장 진로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빛내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최씨는 앞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한웅재 목사님의 ‘소원’이라는 찬양이 제 인생 모토인데 그 가사처럼 ‘작은 동산’이 되는 사역자가 되고 싶어요. 세상 속에서 성경의 가치를 품고 살아가는 것만큼 귀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양 목사는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 펼쳐갈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 벅차다”면서 “이들 셋이 가려는 길을 위해 가까이에서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돕고 싶다”고 전했다.
글·사진=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