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신용카드 1장 분량 섭취… 폐·간 등 47개 기관서 검출
임신부 수정률↓·아이 저체중 악영향… 청력 손실 첫 규명
전문가 “고온 환경엔 페트병서 다량 배출… 마시지 말아야”
임신부 수정률↓·아이 저체중 악영향… 청력 손실 첫 규명
전문가 “고온 환경엔 페트병서 다량 배출… 마시지 말아야”
‘플라스틱 스모그(Plastic Smog).’ 지난해 3월 국제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 발표된 연구논문에 등장한 표현이다. 전 지구에 플라스틱이 공해 수준으로 가득 차 있음을 경고하는 용어다. 환경 파괴에 더해 플라스틱의 인체 유해성은 많이 알려졌지만, 근래엔 잘게 분해된 미세 플라스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동물실험을 통해 인간의 체내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선행 연구에서 미세 플라스틱은 체내 염증 유발, 조직·기관 손상 및 기능 저해, 장 손상, 뇌 신경 독성 및 행동 변화뿐만 아니라 생식 독성(정자와 새끼 수 감소), 발달 지연, 대사 장애, 면역 체계 변화까지 초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 국내 연구진은 미세 플라스틱이 소리를 감지하고 평형을 유지하는 ‘내이(內耳)’를 손상시켜 난청과 균형감각 저하를 일으킬 수 있음을 규명해 국제 학계에 처음 보고했다. 미세 플라스틱이 귀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페트병 통해서도 몸속으로
미세 플라스틱은 5㎜~1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의 아주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말한다. 이보다 작은 1㎛ 이하는 ‘나노(Nano) 플라스틱’으로 불린다. 나노는 10억분의 1m 크기에 해당한다. 형태도 구형, 실 같은 섬유형, 파편형, 필름형 등 다양하다. 이런 미세한 플라스틱 입자들은 해양·담수·토양·지하수·대기 등 모든 환경에 널리 분포하고 순환한다. 생태계를 거치며 언제든 인체에 들어올 수 있다. 예를 들어 미세 플라스틱을 먹은 물고기가 인간의 식탁 위에 올라오거나 공기 중에 떠다니는 나노 플라스틱이 호흡기를 통해 체내로 유입될 수 있는 것이다.
호주 연구팀은 1인당 섭취하는 미세 플라스틱이 매주 신용카드 1장(5g, 2000개) 분량이라고 추산한 바 있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고서에 의하면 수산물을 통해 성인 1인당 미세 플라스틱을 하루 3.6개, 연간 1312개를 섭취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현대인의 생활에 필수적인 생수 페트병이나 세탁 세제, 화장품, 세안제, 치약, 의약품 등에도 작은 플라스틱 입자가 들어 있어 누구나 미세 플라스틱의 영향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평상시는 물론 요즘 같은 여름철 수분을 섭취할 때 흔히 사용되는 페트병에 포함된 미세 플라스틱의 인체 영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다. 올해 초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의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발표 논문에 따르면 현지 마트에서 팔리는 3개 브랜드의 생수 제품에서 1ℓ당 평균 24만개의 플라스틱 입자가 검출됐고 그중 90%가 나노 플라스틱으로 확인됐다. 플라스틱 입자도 7종류(PET, PE, PP, PS, PA, PVC, PMMA)가 나왔다. 연구진은 “PET의 경우 병을 누르거나 마개를 여닫을 때 마찰 때문에, 또 열에 노출될 때 발생할 수 있으며 PA는 정수 필터 소재에서 유래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지하수나 용천수 등 원수를 통해서 유입될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분석과학연구소(KIAST)가 2023~2024년 페트병 생수 27개 제품을 수거·분석한 결과 70%(19개)에서 5㎛ 이상의 미세 플라스틱 입자가 검출됐다. 입자별로는 PE가 가장 많았고 PP, PET 순이었다. 안윤주 건국대 환경보건과학과 교수는 지난 5월 국민생활과학자문단 강연에서 “플라스틱 입자 분석 기술 발전으로 나노 크기의 플라스틱 조각까지 검출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인체 곳곳에 악영향 미쳐
여러 경로로 인체에 유입된 미세 플라스틱은 실제 체내에서 발견되고 있다. 2020년 미국 연구에선 기증받은 시신서 채취한 폐·간·비장·콩팥 등 47개 기관 및 조직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2021년 이탈리아 연구에선 6명의 출산부 중 4명의 태반에서 12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다. 같은 해 미국 연구에선 신생아의 태변과 유아의 대변에서 PET 등 플라스틱 입자가 확인됐다. 2022년 네덜란드 연구에선 사람 혈액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나왔다.
안 교수는 “국내외에서 진행된 다양한 동물실험 연구를 통해 미세 플라스틱 노출이 장 염증 및 장 누수, 고환 염증, 정자 수 감소, 불임, 인슐린 저항성, 비만, 간염, 난소암 등의 유발이나 가속화와 연관 있음이 밝혀진 상황”이라고 했다.
2022년 발표된 연구에선 미세 플라스틱의 경구 노출 시 뇌혈관 장벽을 뚫고 뇌에 쌓여서 잠재적인 신경 독성 가능성이 확인됐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 관련 행동 변화도 관찰됐다.
미세 플라스틱이 오염 물질의 운반자 역할을 해 감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세 플라스틱은 물을 싫어하는 성질을 띠어 미생물이 잘 달라붙는다. 인제의대 일산백병원 산부인과 김영아 교수는 “미세 플라스틱은 그 자체뿐만 아니라 가공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 호르몬과 미생물이 합쳐져 몸속으로 들어올 경우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면서 “특히 여성의 경우 혈관이 많은 자궁·난소 등에 침투해 생식 기능을 약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신부와 아이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중국 연구팀이 임신한 쥐에게 미세 플라스틱을 먹인 결과 태어난 쥐에서 저체중 현상이 확인됐다. 임신 중 엄마 뱃속에서 미세 플라스틱에 노출된 새끼 쥐 역시 난자 성숙이 떨어지고 수정률과 배아 발달이 줄어드는 현상을 보였다.
‘내이 손상’ 청력 손실 첫 규명
원자력의학원 김진수 박사와 서울의대 이비인후과학교실 박민현 교수 연구팀은 환경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Journal of Hazardous Materials) 최신호에 미세 플라스틱의 내이 손상 기전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내이는 달팽이관(청력 담당), 전정기관(균형 담당) 등으로 구성돼 소리를 감지하고 몸의 평형을 유지해 준다.
연구팀은 실험 쥐에게 일회용품에 많이 쓰이는 폴리에틸렌(PE)을 4개월간 매일 10마이크로그램(㎍) 먹이고 내이의 청력과 균형 감각 측정, 뇌 포도당 대사 분석 등을 시행했다.
그 결과 달팽이관과 전정기관에 PE가 0.144㎍ 축적된 것이 관찰됐다. 청력 측정에서는 PE 섭취군이 54데시벨(dB)로, 정상군(31.7dB)보다 더 큰 소리에 반응해 청력 기능 손상이 확인됐다. 보통의 소리(40~69dB)가 안 들리면 중도 난청(청력 소실 50%)에 해당한다.
균형 감각은 트레드밀에서 안정적으로 달린 시간으로 확인했다. PE 섭취군은 평균 322.1초로, 정상군(515.7초)보다 운동 지속 능력이 낮았다. PE 섭취군은 또 양전자방출단층검사(PET)에서 청력 감소 시 나타나는 대뇌 측두엽의 포도당 대사 감소도 관찰됐다.
이처럼 미세 플라스틱의 생체 위해성이 속속 확인되고 있는 만큼, 일상에서 플라스틱 사용 및 노출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페트병 생수 뿐 아니라 주방·냉장고 등 생활 플라스틱 용기는 유리나 세라믹 재질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기온이 높은 날에는 페트병에 담긴 물을 될 수 있으면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고한다. 열로 인해 플라스틱 물병 안에 미세 플라스틱이 더 많이 생성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더운 날 야외에서 물을 마실 때는 스테인리스강으로 된 용기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