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연평균 강수량의 절반 이상이 여름에 집중돼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최근 극한호우까지 잦아지며 산사태 발생 위험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늘어나는 산사태 발생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산림청은 과학기술에 주목했다. ‘산사태 정보시스템’을 첨단화해 산사태를 예측하고 관련 피해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기로 했다. 꾸준한 개선 덕분에 산사태 정보시스템은 실시간 감시를 넘어 48시간 앞선 중기예보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진화했다.
과학적 접근방법 통했다
산사태는 숲·산지 등 각 지형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내적요인(간접요인), 집중호우·태풍·지진 등 산사태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외적요인(직접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산지의 경사가 급하고 토양 응집력이 낮은 마사토로 이뤄진 곳이 많다. 설상가상 폭우까지 잦아지면서 산사태 피해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산사태 정보시스템은 2002년 발생한 태풍 루사, 2003년 기록적 피해를 남긴 태풍 매미가 지나간 이후 본격적으로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2004년 ‘GIS(지리정보시스템)를 이용한 산사태위험지관리시스템’이 구축되면서 산사태 위험지도와 산사태 예측정보가 제공되기 시작했지만,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 이후 더욱 정밀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2012년 시스템의 명칭을 산사태 정보시스템으로 바꾸고 기능을 고도화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산사태 위험등급을 재조정하고 전국의 산림지반 특성을 시스템에 반영했다. 도로·건물·태양광시설 등 산림지형을 인위적으로 변화시킨 곳은 물론이고 최신 수치지도를 시스템에 적용해 더욱 세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최근에는 강우상황을 반영한 실시간 산사태 위험도 및 유역별 위험정보를 표출할 수 있는 수준까지 시스템의 성능이 향상됐다. 기상상태와 각종 지형의 특성을 종합해 산사태 위험도를 도출할 수 있게 된 만큼 예측정보 제공 시점 역시 기존 1시간에서 48시간으로 대폭 확대됐다.
‘대피 골든타임’ 확보 쉬워졌다
산사태 정보시스템은 지난 30년 간의 강우분포·지질특성을 바탕으로 전국을 11개 권역으로 나눠 산사태를 예측하고 있다. 여기에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탱크모델’이다. 탱크모델은 암반을 경계로 설정하고 암반 위의 토양부분을 하나의 탱크로 보는 방식이다. 탱크의 규모는 1시간 산사태 예측을 할 경우 1×1㎞, 2~48시간을 예측할 경우 5×5㎞ 크기를 적용한다.
산림청은 지역별 산사태가 발생한 이력과 탱크 내 빗물의 양을 바탕으로 ‘토양함수지수’를 산정해 그 지수에 따라 산사태 예보 수준을 결정한다. 만약 권역별 토양함수지수가 80%에 달한다면 산사태 ‘주의보’를, 100%에 도달할 경우 산사태 ‘경보’를 내린다. 우리나라만의 지형·강우 특성이 반영된 ‘한국형 산사태 조기경보 시스템(KLES)’이다.
KLES의 토양함수지수와 산사태 위험지도의 위험등급을 조합하면 산사태 위험도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전국 산림유역 및 읍·면·동뿐 아니라 리단위까지 실시간으로 위험도가 분석되는 만큼 대피 우선순위 지역도 즉시 도출 가능하다.
하지만 극한호우와 같은 폭우가 단시간에 내리면 산사태 주의보~경보까지의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대피시간을 확보하기 매우 어려워진다. 때문에 산림청은 올해부터 토양함수지수가 90%에 도달할 경우 예비경보를 발령하고 있다. 기존 주의보~경보 단계에서 예비경보 단계가 추가되면서 각 지자체도 더욱 빠르게 주민들을 대피시킬 수 있게 됐다.
우충식 국립산림과학원 산사태연구과 연구관은 “최근에는 산지를 포함해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영향범위까지 모두 포함해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시간 확인 후 반드시 대피
부처별로 산재돼 있던 사면정보가 산사태 정보시스템에 탑재되면서 더욱 정밀한 산사태 예측이 가능해졌다. 기존에는 산림청(산지사면)과 행정안전부(급경사지), 국토교통부(도로비탈면), 농림축산식품부(산림인접 농지사면), 산업통상자원부(태양광시설), 환경부(공원시설), 문화재청(산림 내 문화재) 등 여러 부처가 사면들을 별도로 관리해 왔다.
지난 4월에는 산림청 주관으로 행안부·국토부·농식품부가 참여하는 ‘디지털 산사태 대응팀’도 신설했다. 산사태 예방·대응·복구뿐 아니라 사면붕괴 및 토사재해 등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실시간으로 산사태를 감시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전문가들은 사전에 안전하게 대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사태는 막을 수 없지만 피할 수는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산사태 정보시스템 홈페이지 등을 통해 각종 정보를 확인하고 전국에 마련된 산사태 대피소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했다. 산사태가 발생했을 경우를 시뮬레이션해 피해 범위를 추정하는 ‘토석류 피해예측지도’에 따르면 현재 전국 대부분의 대피소는 산사태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곳에 지어졌다.
산사태에 대비한 행동요령을 익혀두는 것도 필수다. 기상정보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한편 간단한 생필품 등을 준비하고, 경사면에서 물이 솟는 등 산사태 징후가 있으면 즉시 대피해야 한다. 이종수 산림청 산림재난통제관은 “산사태 위험이 높은 지역의 주민들은 긴급재난문자, 마을방송 등에 항상 귀기울여야 한다”며 “유사시 안전한 곳으로 신속하게 대피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