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세에 얻은 고명딸이 출생 3개월 만에 원인 불명의 전신 발작을 일으켰다. 하루에도 10번 넘게 극심한 발작을 일으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곤 했던 어린 딸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본 지 8년째. 드디어 발작의 원인이 밝혀진다. 약물을 투여해 발작 횟수를 조절하는 ‘미토콘드리아 질환’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론 그간 6000여회의 발작으로 발생한 뇌 손상과 지적장애는 치료할 수 없었다. 결국 딸은 언어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배변 활동과 옷 갈아입기 등 기초적 자조 능력을 갖추는 일도 거의 불가능했다.
‘어린 딸이 고통받는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려 애쓰는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하나님께 벌 받을 만큼 심각한 죄를 지었던가. 아니면 믿음이 부족했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절대자에게 질문을 쏟아내는 이는 론 솔로몬(76) 전 미국 맥클린바이블처치 목사다. 1980년 그가 부임한 이후로 교회는 성장 가도를 달렸다. “크고 영향력 있는 교회를 일구고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사가 되는 것”이란 목표에 거의 도달하려던 중 늦둥이 딸이 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날 이후 솔로몬 부부와 세 아들의 삶은 극명하게 달라졌다. 부부는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느라 탈진할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2005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12년간 그가 하나님께 던진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에서 얻은 연구 결과와 깨달음이 담겼다. ‘메시아닉 주’(예수를 믿는 유대인)인 저자는 대학생 시절 술·마약 중독자로 지내다 노방전도자를 만나 회심했다. 이후 술과 마약을 끊고 캐피탈바이블신학교와 존스홉킨스대 대학원에 진학해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왜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에게 비극을 허락하는가”란 질문에 답하려 각종 신학책을 살피던 그는 적잖은 신학자가 “하나님은 신자의 부정적 상황을 주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걸 발견한다. 고난은 “사탄이 신자를 미워해 만든 상황”이며 “하나님은 고난에 관여하지 않는 방관자”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해석이 “성경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증거로 욥기 등 성경 본문을 든다. 욥은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욥 1:21)이라고 고백했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는”(사 45:7) 존재로 설명한다.
하나님이 생사화복을 주관한다면 그분은 왜 경건한 사람에게 고난을 주는가. “당신을 향한 높고 숭고한 목적이 있어서”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그는 이 고난의 과정을 ‘깨어짐’(brokenness)이라고 불렀다. 모세와 야곱, 베드로와 바울 등 성경 인물뿐 아니라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세계적 전도자이자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 등도 모두 깨어짐의 과정을 거쳤다.
“깨어짐만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유일한 길”이란 그의 주장을 듣다 보면 “그분은 왜 이리 잔인한 방식으로 일하는가”란 의문이 들 수 있다. 저자는 “깨어짐이 파괴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라며 “하나님은 자아의 지배가 깨뜨려지는 모든 과정에 부드러운 사랑과 위로로 함께한다”고 말한다.
저자 역시 딸의 장애라는 깨어짐을 겪으며 겸손함과 영적·정서적 평정심을 얻었으며 수백 명의 장애인과 그 가족을 돌보는 사역에 헌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딸은 이 사역의 희생양일까. 저자는 답한다. “나는 딸의 질환이 사고나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라고 믿는다.… 삶의 결산은 이 땅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늘에서 딸은 온전해질 뿐 아니라 하늘의 보상을 누릴 것이다.”
‘성경 읽고 기도하면 순조로운 삶이 될 것’이라고 믿어오다 고난을 마주하며 혼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책 말미에 저자는 해상 사고로 네 딸을 잃고 찬송가 ‘내 평생에 가는 길’을 작사한 호레이쇼 스패포드의 말을 빌려 깨어짐의 핵심을 전한다. “오 주님, 당신의 뜻대로 나를 사용하소서.… 당신의 사랑이 너무도 분명하게 보이니 나는 더는 어떤 슬픔에도 움츠러들지 않습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