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기업 인수 → 나스닥 상장 ‘대박 꿈’… 대표 오판에 물거품

입력 2024-07-25 04:11
큐텐그룹발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소비자 피해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24일 한 시민이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 앞을 지나가는 모습. 연합뉴스

티몬과 위메프의 유동성 위기 원인이 모기업 큐텐(Qoo10) 구영배 대표의 오판에 있다는 분석이다. 구 대표는 티몬·위메프를 비롯해 적자인 이커머스 기업을 사들여 덩치를 키운 뒤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에 일감을 몰아줘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시키겠다는 그림을 그렸으나 적자 기업 관리에 실패하면서 장밋빛 꿈이 물거품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 대표의 제1 목표는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으로 알려져 왔다. 그는 2021년 미국계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몸값 10억 달러(약 1조3852억원)를 목표로 상장에 시동을 걸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큐텐은 최근 미국 이커머스 기업 ‘위시’를 인수한 탓에 상장 시기를 오는 10월로 미룬 것으로 IB업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핵심 자회사인 티몬·위메프가 흔들리면서 이 계획도 수포가 될 위기에 놓였다.


티몬·위메프는 큐익스프레스 실적 중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핵심 거래처다. 큐익스프레스 한국법인 매출액은 티몬·위메프를 인수한 직후인 2023년 810억원을 기록, 전년(734억원) 대비 10.4% 증가했다. 큐익스프레스는 큐텐그룹 내 거래 비중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2022년도 매출액은 2021년(848억원)보다 13.4% 감소한 점을 보면 티몬·위메프 인수가 실적 개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티몬·위메프가 이번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면 큐익스프레스의 실적도 함께 고꾸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티몬·위메프의 판매 대금 지연 정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구 대표의 전략은 순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큐텐은 티몬(2022년 9월)과 인터파크쇼핑(2023년 3월), 위메프(4월)를 인수할 때 총 6000억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큐텐과 큐익스프레스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을 택해 실제로 내준 돈은 없다. 현금 한 푼 들이지 않고 한국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8%(위메프 4%·티몬 3%·인터파크쇼핑 1%, 2022년 기준)를 확보한 것이다.

올해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큐텐은 올 초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11번가 인수를 추진하다 자금이 부족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위시를 사들이면서 현금 2300억원을 썼다. 이 과정에서 그룹 내 유동성이 고갈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로 티몬(2022년 말 기준)과 위메프(2023년 말) 두 회사의 합산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8827억원에 이른다.

자금력이 부족한 구 대표가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입성’이라는 무리한 꿈을 좇다 발을 헛디뎠다는 관전평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IB업계 관계자는 24일 “구 대표는 과거 G마켓을 나스닥에 상장해 기업 가치를 부풀리는 데 성공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같은 전략을 쓰려고 했던 것”이라면서 “‘적자 이커머스 기업을 줄줄이 달고도 큐익스프레스 상장만 성공하면 된다’는 전략은 처음부터 비현실적이었다”고 꼬집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