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한국 땅을 밟은 80대 탈북민 A씨는 지병인 암으로 최근 세상을 떠났다. 혈혈단신의 A씨는 이단의 늪에 빠지기도 했고 투병 중 고독사로 생을 마감할 뻔했다. 그때마다 A씨 곁을 지켜준 건 다름 아닌 교회였다.
근래 들어 탈북민의 고독사(무연고 사망 포함)가 증가 추세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소외이웃으로 꼽히는 탈북민이 사회 관계망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주춤했던 국내 입국 탈북민의 증가와 이들에 대한 돌봄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교회와 유관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24일 국민일보가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탈북민 지원사업을 펼치는 남북하나재단이 장례를 지원한 무연고 탈북민 사망자(그래픽 참조)는 최근 몇 년간 두자릿수로 늘었다. 올 상반기 기준 12명이었는데 이는 지난해 사망자(14명)의 86%에 이른다. 탈북민 출신의 박 의원은 “국내에 거주하는 무연고 탈북민이 고령화되면서 질병과 심리적 외로움 등으로 고독사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무연고 탈북민 사망자의 증가세는 팬데믹 이후 늘어나는 탈북민 수를 감안하면 앞으로 더 가팔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족과 친인척 없이 무연고자로 국내에 정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탈북민의 정착생활 특성상 ‘나홀로 죽음’ 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무연고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교회의 조직적 돌봄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30대 초반의 탈북 청년 B씨는 최근 오랜 칩거 생활을 끝내고 평소 알고 지내던 목사의 도움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는 “내 주변에도 고립 생활하는 20, 30대 탈북 청년이 많다”며 “대부분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탈북민 사역 전문가들은 경계심이 많은 탈북민 특성상 ‘일대일 케어’를 통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강조했다. 20여년 전 탈북한 손지연(54·가명)씨는 “교회와 성도들이 (탈북민이) 마음의 장벽을 허물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기업과 단체, 지자체 등도 고독사 예방 활동에 합류하고 있다. 남북하나재단은 1년 전부터 hy(구 한국야쿠르트)와 함께 ‘고령·독거 탈북민 돌봄 시범사업’ 을 펼치고 있다. hy의 배달사원이 수도권 거주 탈북민 600명에게 제품을 직접 배송하면서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대구시 등 일부 지자체는 고독사 예방 실태조사를 하면서 위기에 놓인 탈북민 가구를 발굴한 케이스도 있다. 박 의원은 최근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무연고 탈북민 사망자의 장례 지원을 체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하자는 것이 골자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