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괜찮은데요?” 수년째 SNS로만 소통을 해오던 A는 특별히 아끼던 제자다. 교회학교 고등부를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자를 ‘쌤’(선생님)이라 불러주는 그의 이름을 휴대폰에서 검색했다. 그리고 이름 옆 수화기 모양 버튼을 눌렀다. 오랜만에 제자의 목소리를 듣기로 마음먹은 건 순전히 기자로서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A는 최근 베트남 다낭이라는 위치 정보가 적힌 사진 한 장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수영장 맥주 해외… 여자친구. ‘라떼’ 세대라면 혹시 누가 볼까 쉬쉬했을 요소들로 가득한 사진을 보며 미혼 30대 남성 크리스천의 심리가 궁금해졌다. 평상시 신앙 관련 글도 종종 올라오던 그의 SNS였기에 “이거 맞냐”고 물었더니 “쌤, 꼰대 다 됐네요”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비단 A만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금기 또는 지켜야 할 생활 규범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무너지고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지난해 1월 만 19세 이상 개신교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음주(81%), 이혼(78%), 혼전 성관계(71%), 인공유산(61%), 흡연(51%) 등의 항목에서 높은 수용도(‘상황에 따라 가능’+‘해도 무방’을 합산한 백분율)를 나타냈다. 모든 항목의 수용도가 2012년과 2017년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보다 높았다. 특히 흡연과 혼전 성관계는 이전 조사보다 10%p 이상 높아져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변화가 불러온 갈등
문제는 변화하는 행동 규범이 모두에게 환영받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지난 8일 찬양사역팀 위러브(대표 박은총)가 자신들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49초짜리 영상이 논란이 됐다. 영상에서는 7명의 젊은 남녀가 위러브의 곡 ‘아름다운 나라’에 맞춰 팔다리를 흔들며 춤을 춘다. 자유로운 몸동작만큼이나 자유로운 복장이 눈길을 끌었다. 그중 출연자 한 명의 양팔에 그려진 타투(문신)가 시청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세대에 맞춰 가는 건 좋은데 초신자들에게 잘못 전달되는 건 조심해야 할 듯… 앞에 여자분 몸의 문신에 반감이 좀 생깁니다.” 이 댓글은 무려 136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이밖에 “기뻐하는 것이 다 같은 기쁨은 아닙니다. 똑같이 춤을 추고 기뻐해도 믿는 자들은 세상과 구별됨이 있습니다” “자기 흥에 도취된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등 다양한 비판 글들이 이어졌다.
해당 영상은 위러브가 크리스천 댄스 크루 마피와 진행한 협업의 결과물이었다. 문신을 한 인물은 마피의 한 멤버였다. 2022년 하나님의 걸작(Masterpiece of God)이라는 의미를 담아 결성한 마피는 국민일보(2023년 12월 26일자 39면)에도 소개된 바 있다. “영적 전쟁터인 예술계에서 하나님의 군사로 쓰임 받고 싶다”는 이들의 인터뷰는 당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위러브 관계자는 2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해당 멤버는 회심 전 타투를 한 것으로 안다”며 “해외에서는 타투가 패션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고 국내에서도 타투 인구가 늘어나고 있어서 문제가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협업하는 입장에서 함부로 다른 아티스트를 판단하거나 타투를 지우라 말라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했다”며 “여전히 한국교회는 ‘문신=날라리(행동이 점잖지 않고 멋을 부리거나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라는 공식이 굳건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위러브는 조만간 해당 영상에 대한 입장을 담은 영상을 업로드 할 예정이다.
위러브 영상의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타투는 음주 흡연 혼전순결 못지않게 한국교회 안의 뜨거운 논쟁거리다. 한국갤럽이 2021년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젊은 층일수록 ‘TV 출연자의 타투를 가릴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가릴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71%를 기록한 20대와 22%를 기록한 60대의 격차는 무려 50%p에 달한다. 한국에서 타투에 관해서는 세대별 인식차가 두드러지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 성남시 만나교회(김병삼 목사) 부교역자인 우미쉘 목사도 신앙이 없던 학창 시절 했던 문신 때문에 곤란했던 경험을 한 기독교 방송에 출연해 간증한 적이 있다. 그의 오른쪽 손목엔 비둘기가 8분음표를 물고 날아가는 작은 그림이 있다. 우 목사는 지난 4월 방송에서 “레이저 시술을 예약해줄 테니 지우고 오라는 성도님도 많이 계셨다”며 “문신을 금기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문신이 다른 성도의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찬양 사역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청년들이 ‘문신이 있어도 교회에 나올 수 있다’ ‘문신이 있어도 하나님한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저를 통해서 봤으면 좋겠다”며 신앙의 본질에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오해에서 이해로
지즉위진애(知則爲眞愛). ‘알면 진실로 사랑하게 된다’는 뜻으로 조선 후기 유학자 유한준(1732∼1811)이 남긴 글귀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자신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이를 인용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적었다. 알면 사랑한다는 메시지는 비단 문화재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모르면 오해하지만 알면 이해하게 된다. 이해는 사랑과 존중의 토대다.
백광훈 문화선교연구원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디아포라’의 개념을 소개했다. 아디아포라는 그리스어 ‘아디아포론’의 복수형으로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명하지도 금하지도 않은 행동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백 원장은 “예전에는 예배당에서 드럼을 치는 것조차도 큰 논란거리였다”며 “문화가 급변하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젊은 세대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으며 크리스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문화적 갈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만 문신을 한다고 해서 신앙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신앙심이 깊은 젊은이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영훈 성결대(문화선교학) 교수는 ‘힙한’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TPO(Time Place Occasion)’를 신앙 안에서도 준수할 것을 권했다. TPO는 때와 장소 경우에 따른 태도, 복장 등을 구분하라는 패션 용어다. 신앙인에게는 신앙생활에 걸맞은 행동 양식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만 해도 다름으로 인한 긴장감을 낮출 수 있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고린도전서(10:23)의 말씀처럼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게 유익한 것이 아니고 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상기시키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신앙심의 중요한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성세대는 인식의 유연성이 필요하고 젊은 세대는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공동체에서 자신들만의 룰을 정해두는 것도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된다. 충남 천안 주안교회(엄명섭 목사)는 1년에 한 차례 ‘주안신앙백서’ 시간을 갖는다. 이때에는 예배드릴 때의 복장, 이성교제와 결혼, 교인 간의 돈 관계, 성경과 찬송가를 지참하는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교회의 일원이 될 때는 ‘정회원 서약서’도 미리 받는다.
서약서에는 성경을 신앙과 삶의 근거로 삼을 것과 교우들과의 교제를 소중히 여길 것, 봉사와 전도에 적극 참여할 것 등의 내용이 담긴다. 윤리적 행동 규범으로는 ‘성경에서 말하는 성의 윤리를 믿으며 모든 죄에 대한 회개와 거룩한 삶의 추구를 실천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엄명섭 목사는 “교회 안의 분란은 진리 문제보다는 사소한 일 때문에 더 자주 발생한다”며 “미리 대화하고 지침을 정하면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동준 신은정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