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 단국대 죽전캠퍼스. 지난 23일 방학인데도 경영대학원장실은 불이 켜져 있었다. 경영대학원장을 맡은 정연승(54) 기독경영연구원(기경원) 원장이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출근했기 때문이다. 경영대학원장만으로도 24시간이 모자라는 그는 올해부터 기경원 신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기경원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기업 경영에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전문 자문기관이다.
기독 경영 필요성에 눈뜨다
정 원장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신세계 등 기업 자문을 거쳐 현재 한국유통학회장, 한국마케팅관리학회장을 비롯해 정부 중소벤처기업부, 금융감독원 자문위원, 공정거래위원회 심의위원을 맡 고 있다. 경영과 마케팅 분야에서 30년 이상 활동하며 이 분야 최고 전문가로 자리한 그가 기독 경영에 눈을 돌린 것은 역설적으로 기업과 가까이하면서다.
정 원장은 “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 목적과 가치가 정말 중요하다. 그렇지만 대부분 일반 기업 목적은 이윤 추구 이상의 가치를 갖지 않는다”며 “영리와 비즈니스만 고민하는 기업과 비전을 가진 크리스천의 신앙관이 맞지 않음을 느꼈다”고 했다. 모태 신앙인 정 원장은 “경영학에 기독교적 가치관을 접목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기경원에 합류한 그는 “예수님이라면 기업 경영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나님 관점에서 이것을 어떻게 판단하실까를 질문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나님 가치관 맞닿아 ‘잘’하는 경영
그렇다면 기독 경영이란 무엇일까. 정 원장은 “좋은 경영인 동시에 잘하는 경영”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기업을 운영하는 과정에 하나님의 가치관을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이윤을 발생시키고 경영을 잘하는 것”이라며 “이윤을 발생시키고 경영을 잘해야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사회에 환원하는 선순환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기경원은 연구를 통해 기독 경영의 다섯 가지 원칙인 ‘JusT-ABC’ 개념과 ‘안식’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섯 가지 원칙이란 정의(Justice) 신뢰(Trust) 책임(Accountability) 배려(Benevolence) 창조(Creation)다.
기경원은 최근 서울 서초구 네패스 사무소에서 ‘좋은경영연구소 여름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서 정 원장은 JusT-ABC와 안식을 포함한 기독 경영의 핵심 6원칙과 함께 일곱 번째 원칙인 연결(Unity)을 추가로 소개했다.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를 예로 들며 “좋은 경영은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면서 공동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과 통합, 조화되는 것이 좋은 경영의 핵심 가치가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일반 기업 이슈들과 어떻게 접목될까
기업 경영의 방침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이슈는 ESG다. 정 원장은 “환경·사람·관계를 중시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드는 ESG 경영은 정의·신뢰·배려를 중시하는 기독 경영과 굉장히 유사하다”고 했다. 이어 “많은 기업이 ESG 경영을 따라가고 있다”며 “이런 제도 속에 숨어 있는 가치와 원리가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기업 이슈로는 인공지능이 있다. 기업 성격을 망라하고 상당수 기업이 이를 이용하기 위해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와 관심이 증가했지만 이에 대한 도덕적·윤리적 기준은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정 원장은 “인공지능의 등장은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라며 “인간 존엄성, 사생활 침해, 인간을 통제하는 여러 문제가 등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경원은 경영진들이 주목하는 이슈에서 발생하는 부작용과 문제점을 예측하고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말했다.
기독경영은 기업에만 적용될까
경영이라는 단어 때문에 흔히 기독경영을 기업에만 국한해 생각하기 쉽다. 정 원장은 그러나 “기독 경영의 원칙은 기업뿐 아니라 개인의 ‘자기 경영’도 포함한다”고 했다. 그는 “적용하고자 하는 주체의 크고 작음을 떠나 이 원칙을 기업에 적용하면 성과(成果) 가치를, 개인에 적용하면 존재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기경원에서 새롭게 제시한 연결의 개념은 개인적 측면에서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 정 원장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뢰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때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다”며 “모든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좋은 관계를 찾고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용인=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