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라 아야코를 만나는 하나의 출발점

입력 2024-07-26 03:05

지금 와서 돌아보면 10대 시절 읽은 미우라 아야코의 ‘양치는 언덕’은 내가 처음 읽은 본격 그리스도교 소설이었다. 맑고 섬세한 문장, 유약하고 고통 많은 우리 인생에 대한 따스한 시선, 선한 지향이 있는 부드러운 이야기에 한참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그녀의 모든 책을 섭렵할 만큼 열렬한 독자는 되지 못했지만 우리 인생을 향한 그녀의 따뜻하고 연민 어린 시선만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녀는 내게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언제나 마음 한 켠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친구가 됐다.

“일생을 마친 다음에 남는 것은 우리가 모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준 것이다. 악착스레 모은 돈이나 재산은 그 누구의 마음에도 남지 않지만 숨은 도움, 진실한 충고, 따뜻한 격려는 언제까지나 남는다.”

‘미우라 아야코의 길 따라’는 미우라 아야코의 문학과 그녀가 거쳐 간 장소, 그녀가 걸었던 길을 촘촘하고 성실하게 쫓아간 안내서다. 책은 그녀의 인생과 작품을 그대로 소개하는 데 집중한다. 혹자에게는 다소 심심하게도 보일 이 점이 어쩌면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의 삶 이야기가 그녀가 쓴 이야기와 잘 어우러져 다른 부연이 불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중간중간 저자의 문장도 풍성하게 인용돼 있어 그의 문장을 잘 모르는 분이나 한 번도 저자의 글을 읽어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좋은 출발점이 됨직하다.

미우라 아야코를 이미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다시금 그녀의 글과 생애를 한눈에 조망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테다. 그리스도교의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미우라 아야코를 만나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정다운(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