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듯 최초의 인간 아담은 땅의 흙(먼지)과 하나님의 생기로 탄생했고(창 2:7), 결국 인간의 여정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는 말씀대로 먼지에서 끝난다. 인간은 먼지에서 태어나 먼지와 함께 살다가 먼지로 돌아간다. 독일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닦아도 닦아도 계속 쌓이는 먼지에서 우주를 품고 있는 먼지까지 먼지의 모든 것을 책에 담았다.
실제 지구와 인간은 먼지에서 시작됐다. 우주 대폭발(빅뱅) 이후 수소 가스만 있었던 초기 우주는 초신성 폭발 후 거대한 우주 먼지를 내뿜고 그 먼지는 태양을 만들어 냈다. 지구는 젊은 태양 주변을 맴도는 원반 위 먼지 알갱이로부터 생을 시작했다. 우주 먼지 속에는 탄소와 수소, 질소, 인, 황 등 생명체를 이루는 주요 원소들이 포함돼 있다. 우리의 몸은 8%의 수소, 18.5%의 탄소, 3.2%의 질소 등으로 구성된다. 저자는 “우리 안의 수소가 빅뱅이 일어난 후 처음 몇 분 동안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에서 우리 자신은 빅뱅의 일부”라고 말한다.
모든 인간, 모든 생명체는 먼지에 싸여 산다. ‘개인 구름’이라고 불리는 먼지 구름 속에는 입자, 물방울, 포자,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이 들어 있다. 이 개별적인 입자의 혼합물이 바로 우리의 ‘체취’다. 방금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나온 사람이 있다면 그의 개인 구름 속에는 김치찌개가 가득할 것이다. 보통 생각과 다르게 외부보다는 집 내부에 먼지가 더 많다. 많은 집 먼지 입자는 우리 피부에서 나온다. 각질이라고 불리며 매일 우리 몸에서 빠져나가는 세포는 최대 10g이다. 1년이면 3650g으로 신생아 몸무게에 해당하는 수치다. 각질보다 더 많은 먼지 입자는 옷에서 나온다. 최초의 이동식 먼지 측정기를 개발한 랜스 월러스는 “1분당 약 2㎎의 입자가 배출된다”면서 “이는 담배 한 개비를 피울 때 나오는 먼지의 절반가량”이라고 경고했다. 실내 공기가 외부 공기보다 깨끗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먼지는 DNA를 품고 있다. 동물의 배설물이나 털, 분비물 등이 포함된 공기 속 DNA를 분석하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곰이 먹은 연어의 종까지 알아낼 수가 있고, 식물의 먼지를 이용해 접촉한 130종 이상의 동물 DNA를 확인할 수 있다. 먼지 속 DNA는 범죄 수사에도 접목되기도 한다. 9·11 테러로 무너진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서 수집한 먼지에서도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먼지 속에 아편의 흔적이 대량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무역센터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평균적인 미국인보다 훨씬 많은 아편을 흡입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저자는 “먼지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먼지 속에는 기억이 있다. 책은 그린란드의 빙하 속 먼지 입자를 분석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흥미로운 논문을 소개한다. 먼지 입자는 “로마 제국의 첫 200년간 이어진 경제 성장”을 상세히 보고한다. 얼음에 내려앉은 독성 납 먼지를 통해 로마인이 은 제련을 언제 시작했는지 알 수 있고, 그 먼지가 사라진 것을 통해 로마가 언제 멸망했는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품고 있는 빙하는 기후변화로 인해 녹아내리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제 세계의 빙하는 이야기를 멈췄다”고 한탄한다.
먼지는 삶과 죽음, 때로는 황금을 주기도 한다. 해마다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발원해 대서양을 건너는 ‘칼리마 먼지’는 1억8200만t에 달한다. 이 먼지는 남미의 아마존 지역에 해마다 2만2000t의 인(P)을 뿌린다. 식물이 자라기 위해 가장 필요한 양분 중 하나가 인이다. 사하라 사막에서 인이 포함된 먼지가 날아오지 않았다면 세계에서 가장 양분이 부족한 아마존 땅에 엄청난 수종의 나무와 풍성한 초록을 키울 수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칼리마 먼지 속에 금과 은 등의 귀금속이 들어 있기도 하다. 2022년 스페인 푸에르테벤투라섬에 내린 먼지 속에는 1t당 10g의 금이 있었다. 금광에서 채굴하는 광석의 금 함량은 1t당 1~5g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경제성을 지녔다.
저자는 이밖에 먼지가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을지도 살피고, 화산재가 지구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소개한다. 간간이 ‘먼지 퀴즈’를 통해 흥미로운 질문도 던진다. 많은 천체물리학자는 우주는 먼 미래에 소멸할 것이라고, 그리고 또 먼 미래에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렇다면 먼지는? 저자는 “먼지도 부활을 경험할 것”이라고 말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