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태백은 우리나라 석탄 산업의 중심지다. 과거 ‘검은 황금’을 캐던 50여 개의 광산이 있었다. 1980년대 이후 석탄산업이 쇠퇴하면서 명성도 잃어가고 있다. 국내 최대 탄광인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 87년 만인 지난달 말 문을 닫으면서 태백시는 43년 만에 탄광 없는 폐광도시가 됐다.
장성동은 국내 석탄산업을 이끌었던 태백 그 자체였다. 장생(황지 지역) 아래에 있다고 해 하장생(下長生)이라고 불리다가 1981년 태백시 승격과 함께 행정구역상 장성동으로 바뀌었다. 6·25전쟁 이후 대한석탄공사가 창립되면서 장성마을은 눈부신 발전을 시작했다.
장성동에는 석탄과는 연관 없지만 장마철에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이색 볼거리가 있다. 양지마을 체육공원 인근 야산 재피골 아래 높이 약 40m의 석회암 절벽에 위치해 비가 오면 하얀 물줄기를 이루는 ‘비와야폭포’다. 잠깐 내리는 여름 소나기에도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지만, 비가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물길이 뚝 끊기면서 폭포다운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폭포와 연결되는 하천이나 수원지가 없고, 비가 왔을 때 상단 계곡부에 고인 물이 흘러내리는 폭포이기 때문이다. 장마철에는 제법 웅장한 소리를 내며 폭포다운 위용을 과시할 때가 많아 사진을 담으려는 이들의 발길이 몰린다. 큰길에서 폭포 방면으로 연결되는 마을 골목길은 ‘비와야폭포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석탄 명소를 찾아 떠나보자. 먼저 ‘최초석탄발견지’다. 장성3동 이중교 앞에서 31번 국도를 버리고 금천마을로 가는 거무내미(黔川) 계곡을 따라 1㎞쯤 들어가면 ‘최초석탄발견지탑’이 나온다. 태백 석탄산업은 1920년대 초 태백시의 전신이던 삼척군 상장면 면사무소에서 소사로 일하던 장해룡이란 사람이 먹돌배기 근처에서 까만 돌멩이를 주워 오면서 시작됐다. 지질 조사 결과 석탄으로 판명 나면서 당시 석탄이 지표면에 노출돼 있던 먹돌배기는 ‘검은 노다지’가 됐다. 이후 태백 지역에 탄광들이 생겨났고 태백은 전국 제1의 탄광도시가 됐다. 태백문화원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7년 화강암으로 탑을 만들어 세웠다.
태백의 석탄산업에서 철암(鐵巖)도 빼놓을 수 없다. 마을 북쪽 백산과 경계가 되는 철도 변에 높이 20m, 폭 30m가 넘는 바위가 있다. 쇠 성분이 많아 ‘쇠바위’라 불리던 것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 탄광촌이 활황이던 1970년대 철암 지역은 위험수당까지 포함한 고임금을 받을 수 있었던 광부에겐 인생 역전의 밑천을 마련할 ‘기회의 땅’이었다.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서울 명동 거리만큼 붐볐다.
태백 철암역에서 약 170m 거리에 있는 철암탄광역사촌은 옛 탄광촌 주거 시설을 복원·보존해 과거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생활사 박물관이다. 11개 건물 가운데 총 6개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꾸몄다. 산울림, 붐비네, 젊음의 양지 등 향수를 자극하는 간판이 보이는데 모두 폐업 상태다. 2층 기획전시실에는 각종 장부와 철암 지역 학생들의 성적표, 계약서 등을 전시한다. 전시실 흑백사진 속 월급날 사무실 풍경이 인상적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일제강점기인 1937년 건설된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국가등록문화재)이 한눈에 들어온다. 층층이 파인 검은 산이 흰 건물과 대비된다. 장성광업소에서 보낸 원탄을 선별·가공해 현장에서 쓸 수 있게 만든 다음 화물열차에 싣는다. 국내 유일의 선탄시설이자 국내 최초의 무연탄 시설로 최근까지 가동됐다.
철암천을 가로지르는 신설교에 가면 이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을 지지하기 위해 까치발처럼 기둥을 만든 ‘까치발 건물’이다. 과거 도시의 확장 속도를 건축이 따라가지 못해 증축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원래 있던 건물은 상가로 활용하고, 철암천 쪽으로 공간을 확장해 지층 아래 살 집을 마련하면서 생긴 독특한 구조다.
신설교를 지나 언덕에 오르면 광부들이 모여 살던 삼방동이다. 광부 아버지가 빨간 보자기로 싼 도시락을 들고 아이와 함께 선 조형물이 보인다.
철암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통리다. 이곳에 2021년 7월에 개장한 통리탄탄파크가 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세트장이 있는 옛 한보탄광 터에 조성한 체험형 관광시설이다. 실제 탄광으로 사용했던 폐갱도 2곳을 디지털 아트 기술을 활용해 신비로운 공간으로 꾸몄다. 광부들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폐갱도를 걸으면서 레이저쇼와 영상 등 조명과 빛을 활용한 볼거리를 감상할 수 있다.
여행메모
‘비와야폭포길’ 끝 황지천 공영주차장
15일까지 구와우마을 해바라기축제
‘비와야폭포길’ 끝 황지천 공영주차장
15일까지 구와우마을 해바라기축제
‘비와야폭포길’로 들어서면 길 끝에 공영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황지천을 넘어 공원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나무다리가 설치돼 있다. 이 주차장에 빈 공간이 없다면 인근 365세이프타운 주차장에 차를 댄 뒤 10~20분 정도 걸으면 된다.
철암탄광역사촌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다. 첫째·셋째 월요일은 휴관이며 입장료는 없다. 매주 토·일요일 운영되던 철암역두 선탄시설 투어는 장성광업소 폐광과 함께 중단됐다.
통리탄탄파크는 화~일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월요일은 휴무다. 이용료는 어른 80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 4000원이다. 통리역을 활용해 세계여행 테마파크로 꾸민 오로라파크와 ‘통합 이용료’를 적용하고 있어 표 하나로 두 곳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태백은 한우로 유명하다. 밥집·선술집 분위기의 식당에서 한우 연탄구이를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물닭갈비도 별미다. 양념 닭갈비에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끓여 먹는 광부들의 음식이다. ‘고갈두’가 인기다. 고등어·갈치·두부조림의 약자다. 생선조림은 2인분씩, 두부조림은 1인분도 주문할 수 있다.
태백 구와우마을에서는 지난 19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해바라기축제가 진행 중이다.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며, 입장료는 어른 기준 5000원이다.
태백=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