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강보아(20·여)씨는 평소 외출할 때 스마트폰 2개를 챙긴다. 2019년 출시된 ‘아이폰11’과 2014년 나온 ‘아이폰6’다. 아이폰6는 사진 찍는 용도로 쓴다. 강씨는 “채도도 높고 선명한 최신 스마트폰보다는 흐릿한 노이즈가 주는 감성과 느낌이 좋아서 10만원을 주고 아이폰6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강씨 친구인 정승하(22·여)씨도 2018년 출시된 ‘아이폰XR’을 카메라용으로 갖고 다닌다.
강씨와 정씨는 최신형 기기보다 오래된 전자기기에 더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정씨는 “휴대전화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점점 더 선명한 화면 등을 원하게 됐는데, 오래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면 화질이 흐릿해 그런 강박에서 잠시 벗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정씨는 최근 여행을 준비하면서 2000년대 출시된 올림푸스 디지털카메라와 필름카메라를 챙겼다. 그는 “디지털과 SNS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며 “불편함과 투박함 속에서 색다른 해방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MZ세대 사이에서 2000년대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등 과거 제품과 문화에 주목하는 트렌드가 주목받고 있다. 구형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듯한 복고풍 이미지를 활용한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뮤직비디오 등이 인기를 끌면서 이른바 ‘레트로 감성’을 쫓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카메라 성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는 이미 젊은 층 사이에서 명소가 됐다. 지난 19일 세운상가에서 만난 대학생 차모(22)씨는 “뉴진스 감성을 찾아 이곳에 왔다. 가볍고 예쁜 디자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세운상가에서 파는 디지털카메라는 개당 15만~20만원이다. 캠코더는 최대 25만원가량에 팔린다. 물량은 금방 동이 난다고 한다. 40년간 중고 카메라 가게를 운영한 김민환(69)씨는 “메모리가 들어가는 캠코더는 일주일에 2~3개 들어오는데 하루 만에 다 팔린다. 세운상가에 입주한 뒤 지금이 최전성기”라며 “카메라를 찾는 젊은이들이 많아져 시장에 활력이 돈다”고 말했다.
외국인들도 레트로 문화에 동참하고 있다. 세운상가 상인 이규태(68)씨는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에서 온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외국인들은 뉴진스를 언급하거나 틱톡에서 본 제품을 보여주며 제품을 찾는다”고 전했다.
한때 유행했던 MP3 플레이어와 유선 이어폰을 찾는 MZ 세대도 늘고 있다. 대학생 박선경(21·여)씨는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소니 MP3플레이어를 구매했다”며 “좋은 헤드셋도 있지만, MP3만의 치직거리는 듯한 음질이 좋아서 자주 사용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옛 문화를 단순히 신선한 느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정체성과 연결해 해석하는 특성이 있다”며 “2000년대 20대였던 사람들과 지금 20대인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세대 통합의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