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대표에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선출됐다. 나경원 원희룡 등 오랫동안 당을 이끌어온 이들을 제치고 원외 정치인이 압승해 사령탑을 맡았다. 그를 내세웠던 총선에서 최악의 참패를 겪었지만 여당 지지층은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이 표심은 ‘한동훈’을 원했다기보다 ‘그나마 새로운 얼굴’을 택했다고 해석해야 한다. 윤석열정부에 실망한 여론을 극복하고 정권을 재창출하려면 지금 주어진 선택지에서 누가 나을지 고민한 결과물일 테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그에게 준 것은 ‘기대’가 아닌 ‘기회’에 더 가깝고,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이제 그의 몫이 됐다. 극단적 대립과 갈등의 한국 정치를 양극화 수렁에서 끄집어낼 리더십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문을 하는 게 민망할 만큼 이번 경선 과정은 진흙탕이었다. 여당 지지자들이 ‘자폭 경선’이라 자조할 정도로 네거티브 공방이 난무했다. 김건희 여사 문자를 둘러싼 의혹부터 총선 당시의 공천 문제, 한 대표가 법무부 장관이던 시절의 소송 문제까지 집안싸움에 불과한 이슈로 채워졌다. 모든 선거는 미래를 위한 것인데, 이번 선거는 과거만 얘기했고 그것도 치부만 들춰냈다. 여야가 극한 대결을 벌이던 수준 이하 선거의 풍경이 같은 당 안에서 똑같이 재연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절망케 했다. 이런 선거로 당권을 얻었다는 사실은 도리어 약점일 수 있다. 한 대표는 이를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한 통합의 정치를 당 안팎에서 시도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정부의 국정이 순조롭지 못했던 이유에는 당내 주도권 갈등이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준석 전 대표를 둘러싼 논쟁에 정권 초기의 국정 동력을 낭비했고, 지난 총선에선 대통령과 당대표의 충돌이 불거지며 심각한 타격을 자초했다. 이번 전당대회도 이른바 ‘친윤 대 친한’ 구도가 뚜렷이 드러난 무대였다. 이런 상황이 한 대표에게 부여한 과제는 명확하다. 먼저 건설적인 당정 관계를 구축하고, 여소야대 한계를 극복할 당의 통합과 혁신을 이뤄야 하며, 나아가 현 정부의 남은 임기에 국정 목표를 달성하도록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볼썽사나웠던 경선 과정에서 긍정적인 구석을 찾자면, 역설적이게도 서로 싸웠다는 점이다. 전체주의 정당마냥 90% 득표율이 나오는 야권과 달리 다양한 목소리가 있음을 말해준다. 불협화음이지만 무미건조한 단조로움은 아니기에 어떻게 통합해내느냐에 따라 당의 동력이 될 수도, 정치를 바꾸는 힘이 될 수도 있다. 모두 한 대표의 정치력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