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신임 당대표 선출로 막을 내린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는 ‘자폭 대회’라는 성토가 나올 만큼 격렬한 내전 양상을 띠었다. 여권에서는 후보 등록부터 30일간의 당대표 경선이 4·10 총선 패배 후 성찰과 쇄신의 계기로 삼지 못하고 친한(친한동훈)계와 친윤(친윤석열)계로 나뉘어 ‘너 죽고 나 살자’식 싸움에만 몰두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대표 후보 간 ‘네거티브 공방전’은 ‘김건희 여사 문자 무시’ 논란을 기점으로 거세게 불붙었다. 친윤계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원희룡 후보는 경선 초반부터 한 후보를 겨냥한 ‘배신자 프레임’으로 공세를 폈다. 후반부에는 한 후보가 나경원 후보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건 공소 취소 부탁’ 발언을 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싸움 양상으로 치달았다.
김 여사 문자 논란이 변수로 떠오른 건 지난 4일이다. 김 여사가 총선을 앞둔 지난 1월 한 후보에게 자신의 명품가방 수수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 의사를 밝혔다는 텔레그램 메시지 내용을 CBS 측이 재구성해 내보내면서 파문이 일었다. 급기야 김 여사가 한 후보에게 사적으로 다섯 차례 보낸 문자 전문이 공개되는 상황까지 갔다.
친윤계는 ‘고의 총선 패배’ 의혹까지 꺼내 한 후보를 압박했다. 한 후보가 당대표가 되면 당정관계가 파탄 날 수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이에 한 후보는 “김 여사가 사과할 뜻이 없다는 확실한 입장을 여러 경로로 확인했다”며 일축했다.
다른 주자들은 한 후보의 비례대표 사천 의혹, 법무부 장관 시절 여론조성팀 의혹 등을 잇따라 제기했다. 친윤계인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은 여론조성팀 의혹과 관련된 일부 텔레그램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공개하기도 했다. 전당대회 파열음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난 15일 충청권 합동연설회장에서는 강성 유튜버, 지지자들 간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졌다.
지난 17일 CBS 주관 방송토론회에서는 한 후보와 나 후보가 정면충돌했다. 한 후보가 나 후보에게 “(법무부 장관이던) 제게 본인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를 취소해 달라고 부탁한 적 있지 않냐. 제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친윤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고, 일부 당 중진, 광역단체장들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한 후보는 결국 18일 “신중하지 못했던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정계 입문 뒤 자신의 발언에 대한 첫 공개 사과였다.
새 지도부는 선출됐지만 여당 안팎에서 ‘NEXT 보수의 진보’라는 이번 전당대회 슬로건이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후보 간 비방전 여파로 야권에 공세의 문만 열어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미 야당은 “국정농단 단서가 드러났다”며 ‘특검 드라이브’를 예고한 상황이다. 한 영남권 의원은 “총선에서도 참패했는데 ‘집안싸움’까지 겹치며 점입가경이 됐다”고 토로했다. 다른 초선 의원은 “민주당 좋은 일만 해준 전당대회”라고 촌평했다.
고양=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