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와 무관한 종교 과목… 학생들 굳이 선택할까

입력 2024-07-24 03:02
고교학점제가 내년 전면 도입된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기독사학도 종교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할 수 없다. 사진은 텅 빈 기독교 학교 교실 이미지. 챗GPT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앞두고 기독사학들이 긴장하고 있다. 내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됨에 따라 입시와 무관한 종교 과목이 외면받을 수 있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종교 교과의 축소는 곧 기독사학의 중심축인 교목실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종교 과목을 선택할까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기초 소양과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진로·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누적해 졸업하는 제도다. 전에는 주어진 시간표의 수업을 듣고 졸업했다면 이제는 대학처럼 본인이 수업 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고등학교 3년간 192학점, 학기당 32학점을 취득하면 졸업할 수 있다.

문제는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종교 과목이 필수에서 선택 과목으로 바뀌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기독사학에 다니는 학생이라도 종교 과목을 선택하지 않으면 듣지 않아도 된다. 고교학점제 대책위원장인 윤재희 숭실고 교목은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학생들이 종교 과목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입시와 관계가 없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고교학점제에서 6학기(3년) 동안 같은 수업을 반복해서 들을 수 없게 한 규정도 기독사학들에는 적잖은 고민거리다. 종교 교과를 억지로 다양화하지 않는 한 학생들은 기존보다 종교 수업을 적게 이수하게 된다. 고교학점제에서 교과별 최소 학점이 2점(수업당 2시간)이라는 것도 우려된다.

김세환 덕신고 교목은 “종교 교육의 경우 한 번의 수업이 2시간 동안 진행해야 할 필요는 없다.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앙과 가치를 전수하기에 짧더라도 반복해서 교육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종교 과목에 2학점을 부여하면 다른 과목이 그만큼 편성에서 빠지게 된다. 진로에 대한 부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고민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교목실이 사라진다?

일부 기독사학에서는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교목실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포착된다. 종교 과목의 영향력이 줄면 담당 교사의 수요가 줄고 자연스럽게 교목실의 영향력도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목전국연합회 회장인 용석범 대광중 교목은 “교목실은 기독사학에서 종교 교육의 중심으로, 교목실의 기능이 약화하면 기독사학의 정체성 유지에 큰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교목실이 담당하는 다양한 신앙 활동도 감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교학점제뿐 아니라 사립학교의 특성을 무시한 채 교육과정을 획일화하는 교육 정책에 대한 우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기독사학의 특성은 사라지고 학교가 단순한 입시 준비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게 교목들의 공통된 견해다.

김종화 명지고 교목은 “고교학점제뿐만 아니라 평준화 정책, 사립학교법 개정, 종교교육과정, 자사고 폐지, 사학 공영화 정책 등 획일화된 교육 정책이 기독사학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립학교의 자율성은 기독교 사립학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기초로서 매우 중요하다”며 “그러나 이러한 자율성이 종교교육의 자유와 함께 위축되면서 기독교사립학교의 특수성과 다양성이 무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고교학점제가 기독사학의 교육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선택 과목을 통해 학교의 종교학적 과목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며 “고교학점제 도입 후에도 학교의 자율성은 유지될 것이며 이는 기독사학에도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장인 박상진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교육정책이 사립학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사립학교, 특히 종교계 사립학교의 존재를 인정하고 학교의 건학이념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고교학점제를 수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헌법적 권리를 회복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동준 이현성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