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가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수행해 하나님나라를 확장해가는 선교사역을 돕기 위해 설립됐다. 대중문화의 역기능으로부터 교회의 정체성을 지켜내고, 나아가 올바른 기독교 문화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한 달에 한 번 소개한다.
“무슨 수를 써서든 만들어 주세요, 1등급.” 얼마 전 종영했던 드라마 ‘졸업’의 첫 장면 첫 대사이다. 이는 대치동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 노련해진 1타 강사 서혜진(정려원 분) 팀장이 후배 강사에게 학부모 상담을 연습시키는 장면이다. 후배 강사는 문학적 기본 소양이 잡혀있지 않은 학생에게 독서 리스트를 만들어 주어 읽는 습관을 들이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서혜진은 “1등급을 만들기 위해서 교양이나 상식을 가르칠 때가 아니라, 주입식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대한민국 교육 과정이 흘러가는 방향과 우리 사회 인문학이 처한 곤경을 깨닫게 해 주는 장면이다. 주인공들 자체가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이자 사교육 문제의 핵심에 서 있는 인물들이지만 ‘졸업’은 단순히 사교육 문제의 심각성을 비판하거나 혹은 미화시키지 않는다. 등장인물 중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모두 현재 납작해진 한국 문학교육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고 고뇌하고 있음을 비춰준다.
나 역시 고등학생 때 국어 과목을 좋아했지만 머릿속에 남는 수업에 대한 기억은 이것뿐이다. 시 소설 수필 등 새로운 문학작품을 만날 때 읽기보다는 먼저 펜을 들고 선생님이 읊어주시는 작품의 종류, 저자의 의도, 사용된 기교법 등을 받아 적었다. 그리고는 시험에 나올 만한 예시 문제를 골라 풀었고 그 문제를 맞히면 나는 지문을 이해한 학생, 틀리면 지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생이 되었다. 이렇듯 1등급을 위한 인문학 공부만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학생에게 글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깊이 있게 가르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지금 상상이나 공감이 필요한 문학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청년들의 문해력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뉴미디어의 보편화로 읽는 습관을 들이지 않는 것도 원인이 되겠지만 그 탓만 하고 있을 순 없다. 대학 진학만을 목적으로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공교육과 학원가, 그리고 가정교육 방식에도 큰 책임이 있다. 결국 청년 문해력 문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와 교육, 문화가 만든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문해력이란 텍스트만 온전히 알아서는 불가능하다. 텍스트 너머에 있는 저자의 삶이나 화자가 처한 상황, 그리고 독자 자신의 세계를 잘 모르고 있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성경을 읽을 때도 중요하다. 심지어 성경은 오늘날의 독자 외에도, 그 당시 독자가 가진 삶의 맥락까지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설교에도 성경 텍스트 너머의 콘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이 필수적일 것이다. 설교자 혹은 교사가 말하고 싶은 신앙적 메시지에 그저 성경 본문만 끌어다 쓰는 것, 혹은 앞뒤 맥락과 시대가 가진 세계관을 배제한 채 선포하는 말씀은 문자주의적 신앙만 강화하는 것이다.
상상과 공감이 멈춘 시대를 살아가는 ‘졸업’ 속 등장인물은 결국 성공과 성장, 돈과 권력에 취해 인간을 도구화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보다 밟고 올라서는 이야기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오랜 역사 속 인간의 삶과 고뇌가 담긴 문학 작품을 그저 시험문제 중 하나로 본다면 이 세계는 진일보할 수 없음을 가르쳐준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정답을 내려주는 성경해석이 아닌, 신앙인이 주체적으로 올바르게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근육을 길러주는 장이 돼야 한다. 본문 너머에 있는 시대적 상황과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세계관을 탄탄하게 세워줘야 한다. 건강한 성경 문해력을 길러주는 것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을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다. <끝>
문화선교연구원 임주은 연구원
◇그동안 ‘오늘, 신앙과 문화’로 함께해주신 문화선교연구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