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검찰총장은 22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김건희 여사를 제3의 장소에서 대면조사하고 이를 사후보고한 것은 명백한 원칙 훼손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장은 김 여사 조사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도 지시했는데, 이는 검찰 지휘체계 훼손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날 오전 이 총장 대면보고에서 김 여사 조사를 사후보고한 데 대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팀 소속 검사가 이 총장의 진상조사 지시에 반발해 사표를 제출하는 등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향후 김 여사 처분 및 대검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갈등이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 총장은 지난 20일 오후 11시10분쯤 이 지검장으로부터 김 여사 조사 관련 ‘사후 통보’를 받고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이 지검장은 이후 사후보고가 불가피했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심야에 이 총장 자택을 직접 찾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총장을 만나지 못했고, 그다음 날 오전에도 연락했지만 결국 만남은 불발됐다.
이 지검장은 김 여사 조사 후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며 주변에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김 여사 측이 소환조사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제3의 장소로 설득해 조사한 것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계속 소환조사를 고수해 검찰 수사가 교착 상태에 빠지는 것보다 검찰청 밖 조사라도 진행해 답을 들으려 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날 이 지검장은 총장 대면보고에서 제3의 장소에서 조사를 한 경위를 설명하고, 보고가 늦어진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서울중앙지검은 총장 지휘권이 없는 도이치모터스 사건 조사가 먼저 정해졌고, 명품가방 사건 조사 여부는 유동적이었기 때문에 사전보고를 할 수 없었다는 입장은 굽히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에서 형사1부로 파견돼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을 수사하던 김경목(사법연수원 38기) 부부장검사는 이날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주변에 ‘사건을 열심히 수사한 것밖에 없는데 감찰 대상으로 분류돼 회의감을 느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은 다만 이번 지시에 대해 “감찰 개시는 아니며 사실관계 확인 차원”이라고 밝혔다. 한 전직 검찰 간부는 “이번 사태가 집안싸움으로 비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향후 김 여사 불기소가 유력한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법조계 일각에선 이 총장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직권 소집해 외부위원 판단을 받아보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국민 눈높이를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 가능한 카드”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앞서 지난 1월 ‘이태원 참사’ 관련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사건 수사심의위를 직권 소집한 바 있다. 당시 서울서부지검 수사팀은 대검에 불기소를 보고했지만, 수심위 의결에 따라 기소했다.
이형민 김재환 신지호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