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스쿨존 참변 없어야” 흰색 손수건 흔들며 천국 가는 길 배웅

입력 2024-07-23 03:08
김정아 집사가 최근 경기도 수원 자택에서 진행된 국민일보 유튜브 ‘더미션’ 인터뷰에서 아들 조은결군에게 영상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조군은 지난해 5월 스쿨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위반한 버스에 치여 숨졌다. 아래 사진은 조군이 공원에서 뛰어놀며 웃는 모습. 유튜브 더미션 화면 캡처, 김 집사 제공

이 땅에서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맞이할 때, 그 죽음이 내 목숨보다 귀한 자녀일 때 우리는 하나님께 ‘왜?’라는 질문을 품게 된다. 참척(慘慽)의 고통을 부여잡고 하나님의 섭리를 추측하며 이해하려 애써보지만 이 순간은 성경이 증거하고 약속하는 천국 소망조차 희미하게 느껴질 뿐이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는 그분 앞에 서는 그날에 모든 것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날까지 우리가 이 땅에서 붙들어야 하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 고통을 넘어선 하늘의 소망이 아닐까.


유튜브 채널 ‘더미션’의 기획 인터뷰 ‘그날’은 우리 사회에 큰 슬픔을 안겨준 사건을 재조명하고 신앙으로 이를 극복한 가정을 만나본다. 두 번째 인터뷰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신호를 위반한 버스에 치여 숨진 조은결군의 가정이다.

이 사고는 지난해 5월 경기 수원시 호매실동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했다. 하굣길에 건널목을 건너던 조군이 앞 버스와 배차 간격을 좁히려 신호를 무시하고 우회전을 시도한 버스에 치여 숨졌다. 최근 은결군의 어머니, 김정아 집사를 자택에서 만났다.

은결이가 태어난 ‘그날’

은결이는 2015년 10월 28일에 태어났다. 세 남매 중 막내아들이었던 그는 집안의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 김 집사는 “은결이는 우리 가족에게 늘 웃음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1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쌍둥이 형과 누나에게 ‘원숭이’라고 불릴 만큼 개구쟁이였다”고 회상했다.

“은결이는 라면을 무척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친구들과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것도 즐거워했죠. 뛰어다니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달리기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었어요. 은결이와 생일 파티를 함께한 게 딱 7번이었더라고요. 이 땅에서 함께 지낸 시간이 너무 짧아서 그 모든 순간이 생생히 기억나요.”

은결이가 떠난 ‘그날’

“은결이가 사고가 났는데 빨리 와봐야 할 것 같아!”

지난해 5월 10일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던 김 집사는 사고 소식을 듣고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장소를 묻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이자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 그곳뿐이었기 때문이다.

사고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차들은 네 방향으로 꽉 막혀 있었고 구급차와 소방차도 도착해 있었다. 은결이는 구조되지 못한 채로 있었다.

김 집사는 “먼저 도착한 은결이 아빠가 그 모습을 차마 보여줄 수 없었는지 나를 막아섰다. 그 순간에는 기도할 생각조차 못 하고 언뜻 보이는 은결이의 모습이 너무 아파 보여 목놓아 울었다”고 말했다.

구조된 은결이는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 응급실로 향했지만, 끝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김 집사는 “정말 드라마에서만 보던 일이 나한테 일어났구나 싶었다. 한마디 인사도 못 하고 세상에 이런 이별이 어딨나 싶어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너무 차갑게 식어가는 은결이를 끌어안고 ‘우리 아기 추위도 많이 타는데 왜 이렇게 차가워’ 이 말만 되뇐 것 같아요.”

은결이가 천국으로 떠나는 날, 학교 친구들과 지역 주민 수백 명이 흰색 손수건을 흔들며 함께 배웅했다. 이날 이웃들은 “다시는 스쿨존에서 이런 참변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그날’

김 집사는 “때론 은결이가 우리 곁에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아 슬퍼하고 분노하기도 한다”며 “하나님이 왜 데려가셨는지, 왜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들때도 있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은결이를 기억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남아있는 두 자녀의 엄마로서 눈물을 닦고 일어날수 밖에 없었어요.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는 그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이니까요. 다시 일어서기 위해 열심히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은결이네 가족을 지탱해 준 것은 신앙이었다. 가족들은 일상 속에서 “우리 은결이는 천국에 있으니 우리도 이 믿음 갖고 언젠가 천국에서 만날거야”라는 소망을 붙들고 살아간다. 김 집사는 “은결이와 천국에서 다시 만날 그날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마음은 우리 가족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은결이가 바꿔놓은 세상

은결이를 사망하게 한 버스 기사에게는 징역 6년이 선고됐다. 그날 사고 이후, 학교 앞 스쿨존에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건널목은 운전자의 눈에 잘 띄도록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었고, 사고가 발생했던 우회전 차선은 조금 더 뒤로 옮겨졌다.

그는 “아직도 그 길을 차마 지나다니진 못하지만, 다른 길로 지나가면서 보니 운전자들이 이전보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우회전 신호를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며 “어린이뿐만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노인까지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안전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집사는 “천국에서 곧 은결이를 만날 날을 기대하며 매일 편지를 쓴다”고 덧붙였다.

“사랑하는 은결아, 천국에서 평안하니? 하나님과 함께 평안히 지내고 있겠지. 곧 천국에서 만나자. 엄마가 그때 우리 아기 많이 안아줄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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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