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대미흑자 표적되나… “트럼프, 한·미FTA 흔들 수도”

입력 2024-07-22 00:02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러닝메이트인 J D 밴스 상원의원과 첫 합동 유세를 진행했다. AFP연합뉴스

미국 대선을 3개월여 앞두고 역대 최대 규모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가 ‘트럼프 2.0’ 시대의 주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공화당 후보로 선출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욱 강화된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천명하면서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미국의 통상 압력을 자극할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배터리 등 국내 주력 업종에 대한 보조금 축소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 1기에 한국이 겪었던 관세 인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논란이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6월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287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5.1% 증가했다. 상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로 현 추세가 하반기에도 이어진다면 연간 기준 지난해 흑자 규모(444억 달러)를 상회할 전망이다.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트럼프-바이든 행정부를 겪으며 오르내림을 보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7년 179억 달러였던 대미 무역 흑자는 이듬해 139억 달러, 2019년 114억 달러로 하락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환율조작국’ 지정 위협에 한국은 미국산 셰일가스 구매 등으로 대미 무역수지를 조절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 166억 달러로 반등한 대미 무역 흑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2021년 227억 달러에서 다음 해 280억 달러, 지난해 444억 달러로 급증했다.

한국의 무역흑자 확대는 트럼프 2.0의 주요 공약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종 무역 장벽을 동원해 무역 적자를 낮추고 자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모든 수입품 관세를 기존 3% 수준에서 10%까지 높이는 ‘보편 관세’를 도입하고, 상대국 관세가 10%라면 미국도 10% 관세를 물리는 ‘트럼프 상호무역법’ 도입 방침도 밝혔다. 그는 지난 18일(현지시간) 후보 수락 연설에서 “미국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며 “미국에서 파는 상품은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집권 2기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대한 통상 압박 수위를 더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1월 취임 이후 자국 자동차산업 적자를 이유로 한·미 FTA 개정을 요구한 바 있다. 미국은 당시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해 25%의 철강 관세 부과를 무기로 내걸었고, 결국 2021년 철폐 예정이던 한국산 화물자동차(픽업트럭)의 미국 내 관세(25%)가 2041년까지 연장되기도 했다.


산업계는 지난해 대미 흑자 규모가 가장 컸던 자동차 업종(289억 달러) 등이 재차 추가 관세 위협에 직면할 것으로 본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완성차 수출 비중의 45.4%가 미국”이라며 “추가 관세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경제 책사이자 별명이 ‘툴박스(공구함)’인 로버트 라이트하우저 전 미국무역대표부 대표가 주요 교역국에 다양한 압박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반도체·배터리 등도 ‘트럼프 리스크’의 영향권이다. 두 업종은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칩스법) 및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보조금 정책에 맞춰 북미 생산·공급 기지 투자를 대폭 늘려왔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바이든 지우기’가 본격화할 경우 보조금 축소 등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칩스법 및 IRA 법안의 전면 폐지는 어렵더라도 (트럼프 재집권 시) 행정부 권한을 활용한 보조금 축소 등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최근 해외 수출이 급증한 방산 업종에 대해선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로 한·미 방산협력이 후퇴하고 미국 업체와의 수주 경쟁도 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재집권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일각에선 미국의 반중 정책 강화로 국내 주요 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과격한 발언으로 원하는 걸 얻어내는 ‘트럼프 스타일’은 이미 한국 산업계가 한 번 경험했던 일”이라면서도 “관세 민감도와 미국 내 산업 기반에 따라 산업 간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