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사학이 기로에 섰다. 기독 자사고들은 학령 인구 감소 여파에 백기를 들었고 일반고 역시 수업 선택권과 교원 임용 문제로 건학이념 구현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내년 전면 시행을 앞둔 고교학점제로 자사고와 일반고 모든 기독사학이 이중고에 처할 거란 교육 현장의 우려도 나온다. 국민일보는 기독사학이 처한 현재의 위기를 들여다보고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과 대안을 살펴본다.
최근 이화여대 사범대학 부속 이화금란고등학교(이대부고)가 일반고로 전환하기 위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 취소를 신청했다. 이대부고의 일반고 전환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응으로 확인된다. 이대부고 홈페이지에 공개된 지난 4월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이윤규 이대부고 교장은 “2010년 자사고로 지정돼 15년간 운영했지만 학교 발전 계획의 일환으로 일반고 전환 절차를 진행하게 됐다”며 “지금보다 학령인구의 감소가 예상돼 선제적으로 통합 운영 학교로 신청해 운영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신입생 정원이 420명인 이대부고는 입학 충원율이 2022학년도 87%, 2023학년도 85%, 2024학년도 79%로 매년 낮아지고 있었다.
서울권역 기독 자사고 가운데 이대부고의 일반고 전환은 대성고등학교에 이어 두 번째다. 자사고 지정 9년 만인 2018년 일반고로 전환된 대성고 역시 학생 충원의 어려움이 전환 이유였다. 대구지역 기독 자사고였던 경일여고도 2020년 일반고로 전환했다. 경일여고의 경우 일반고 전환 직전 2019학년도 신입생 모집에서 0.34대 1의 경쟁률을 보였고 전년도에도 0.56대 1로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기독 자사고들이 자사고 지정을 스스로 포기하는 주된 원인은 신입생 모집난으로 파악된다.
서울시교육청이 최근 발표한 ‘2024학년도 학급 편성 결과’를 보면 지난 3월 기준 서울시 전체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학생 수는 83만7834명으로 확인된다. 지난해와 견줘 1만7478명 줄었다. 서울 유치원생은 4년 만에 18.1%(1만3521명)가 줄었다. 기독 자사고들이 인구 감소에 따른 운영난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될 경우 신입생 미달 우려를 덜 수 있다. 일반고는 교육청이 학생을 자동 배정하기 때문이다. 자사고 때는 받을 수 없었던 시설비와 운영비 등도 지원받게 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2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대부고가 일반고로 전환될 경우 2년간 25억원을 지원받는다"며 "이듬해 2~3학년에 올라가는 기존 자사고 재학생들의 학비도 2년간 감면된다.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학교 시설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독교 건학이념을 구현하는 데엔 난항이 예상된다. 일반고의 경우 기독교 수업을 필수로 지정할 수 없고 학생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기독교 강의를 개설하더라도 여타 강의를 개설해 학생들의 복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한국기독교학교연합회 교목협의회 총무인 우수호 대광고 교목실장은 "학생들이 자진해서 오는 자사고와 달리 일반고는 추첨으로 학교에 오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선택 과목을 추가 개설할 경우 교사도 더 필요하고 교실도 더 마련해야 한다. 재정과 인력이 넉넉지 않은 기독 일반고가 강의실에서 건학이념을 구현하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또 다른 제약도 뒤따른다. 자사고 지위를 내려놓으면 교원 임용은 교육감이 주관하는 필기시험을 거친 뒤 선발해야 한다. 건학이념을 구현할 교원을 뽑고 싶어도 교육감에 위탁한 필기시험 합격자 중에서만 교원으로 채용할 수 있는 셈이다. 박상진 장로회신학대 기독교교육과 교수는 "교원 임용 권한이 축소된 건 건학이념을 구현하고 싶은 기독사학들엔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대부고 교목실장 조종철 목사는 "일반고가 되면 기독사학으로서의 자율권 축소가 불가피하기에 기독 정체성 유지에 대한 염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일반고 기독사학들이 제한적 조건 속에서도 학원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 왔듯 이대부고 역시 가능한 길을 찾아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현성 손동준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