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 환자들을 힘들고 지치게 하는 말이 있다. 바로 “나을 수 있다”와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기 환자에게 끝까지 나을 수 있다는 말은 위로와 희망이 아니라, 침묵보다 못한 무책임한 참견으로 다가온다. 환자가 입맛이 없고 마음도 심란해서 어떤 음식도 입에 넣고 싶지 않은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스스로 애가 끓어 더 호들갑을 피운다. 먹으라는 잔소리가 환자를 위한 진심인지, 지켜보는 이들의 자기 불안 해소인지 분간이 어렵다.
일본의 여성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는 유방암으로 투병하다 결국 온몸으로 암이 퍼진 말기 판정을 받게 된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에서 혼란스러운 자신에게 가족과 친척, 지인들은 누군가의 치료 성공담부터, 수상쩍은 면역 요법과 건강식품까지 정보만 얻었다 하면 옥석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알려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런 말들이 위로와 격려가 되기는커녕 ‘지긋지긋했다’고 책에 적고 있다.
마키코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 의료인류학자는 환자와 가족들이 허황된 치료에 매달리다 시간과 돈, 생명을 허비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결정에 지친 환자를 대신해 의사가 대략적인 방향을 결정해 줄 것, 그리고 설사 의사의 결정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의사 혼자 책임지지 않게 하는 구조와 문화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하지만 그 역시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온갖 의료 소송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에서 퇴원한 89세 환자에게 음식을 먹이다 질식사가 발생하자 금식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병원을 고소한 사건을 예로 든다. 나쁜 결과에 대한 원망 또는 소송에 대한 걱정으로, 혼란에 빠진 환자와 가족들을 대신해 방향을 결정해 줄 용기 있는 의사와 간호사는 점점 만나기 어렵게 됐다.
말기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허황된 대체 요법도, 냉정한 과학적 근거도 아니다. 불확실한 내일보다 오늘 하루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희망과 신뢰의 관계다. 하지만 현실은 의사와 환자 사이 불신으로 책임이라는 선이 그어진다. 그리고 무분별한 정보들 속에서 방향을 잃은 환자와 가족들은 시간과 생명을 허비한 채 더 지치고 고독한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