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리움으로 시작되고, 기다림으로 영글어갑니다. 예를 들어 자녀를 태중에 품은 어머니는 그 아이가 나올 때까지 열 달을 기다립니다. 청춘 남녀가 사랑할 때는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기까지 수개월 수년이라도 기다립니다. 일본군에게 잡혀간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십수 년의 오랜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지요. 그래서 일본강점기에 남편을 기다리다가 끝내 돌이 되어버렸다는 망부석의 이야기를 지역 곳곳에서 전해 듣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랑이 있는 곳에는 늘 기다림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사랑과 기다림의 원조라고 한다면 우리는 단연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8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 사랑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시는 기다림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뒤돌아섰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셨고, 아픔과 탄식의 말을 내뱉으며 하나님을 원망했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셨습니다. 우리가 실의에 빠져 아무도 모르게 쓸쓸히 어느 골방에서 눈물을 훌쩍이며 울고 있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셨고,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이야기처럼 세상의 욕망과 욕심에 취해 하나님을 저버렸을 때도 하나님은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동구 밖에서 버선발로 기다리시던 아버지처럼 그렇게 우리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기다리셨습니까. 바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향한 그 사랑과 기다림을 잘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15절의 말씀대로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또한 16절에 보면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라는 말씀대로 ‘잊지 아니하시는 사랑’,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에서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점철된 하나님의 사랑은 신약에서 ‘날 향한 십자가의 사랑’으로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잊지 않으셨기에, 아니 잊을 수 없으셨기에, 손바닥에 새긴 그 사랑으로 내 모든 죄와 무거운 짐을 다 지신 채 갈보리 그 언덕 십자가를 지시며 오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시며 장차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나를 기다리시겠다고 약속하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금 꽃 피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랑의 선순환이 계속해서 우리의 삶을 감싸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날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너무나 사랑한단다. 그래서 내 곁에 떠나 있던 너를 너무나 그리워했고, 네가 다시 내 곁에 오기만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은 그리움으로 시작되고, 그리움은 기다림으로 영글어 갑니다. 그리고 그 그리움과 기다림 사이, 서로를 향한 온전한 신뢰가 마침내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그 그리움과 기다림의 사이, 주저하지 마시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달려가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그 품 안에 안겨 주실 것이며, 위로해 주실 것이고, 또한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끊어지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홍성익 목사(부천 솔로몬교회)
◇홍성익 목사는 명지대학교 영어영문학과(B.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 (S.T.M.)을 졸업했습니다. 현재는 부천시기독교목회자연합회 상임회장과 세계한인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천시 고강동 소재 솔로몬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