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이 몰려와 한바탕 장맛비가 퍼붓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맑다. 볕이 따갑도록 강하다. 파랗게 갠 하늘 아래, 빨랫줄에 걸려 펄럭이는 하얀 수건을 보면 청량한 기분마저 든다. 최근 출간한 이소연 시인의 시 ‘우리 집 수건’에는 슬며시 웃음 나는 귀여운 표현이 나온다. “내가 발을 닦은 수건으로/ 남편이 얼굴을 닦는다/ 발을 닦은 수건이 얼굴을 닦은 수건보다 더러울 것 같지 않은데/ 발이 알면 억울할 일/ 말하지 않기로 한다/ 시를 읽다가/ 발 닦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걸 알게 될 수도 있다/ 수건이 나를 두른다.”
발은 존재의 바닥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신체의 무게를 지탱한다. 그런데 발 닦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 사람들은 더럽다고 말한다. 시인은 ‘발’의 입장도 상상해 보고, ‘발’ 닦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남편의 마음도 고루 헤아려본다. 시인의 남편이 이 시를 읽는 순간 ‘발 닦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걸’ 알아차리게 되는 상상도 재치 있다. 흔한 게 수건이라지만 꼭 필요할 때 모자란 것도 수건이다. 사랑이란 매일 ‘수건이라는 단순한 사각’을 접는 일상의 일일 테다. 가족들을 위해 잘 마른 수건을 차곡차곡 개어 놓는 일이야말로 성실한 사랑의 행위이다.
시를 읽다 보니 고향의 빨래터가 그리워진다. 바둑판만 한 널찍한 돌에 대고 빨래하던 큰언니도 떠오른다. 큰언니는 가장 바지런히 엄마의 살림을 도와주곤 했는데, 돌아보면 빨래를 비비고 조물조물 주무르던 그 손이 참 작았더랬다. 나는 언니 옆에 쪼그려 앉아 언니가 빨래하던 모습을 지켜보았다. 비누 거품이 부풀었다 꺼지고, 쌀뜨물 같은 비눗물이 다 빠지도록 빨래를 헹구던 언니. 빨래를 마치면 물을 한 바가지 떠서 종아리에 끼얹던 언니. 언니랑 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집에 가는 길, 정수리가 뜨거웠던 여름날, 바글바글 강된장 끓이는 냄새 나던 골목은 이제 머나먼 기억 속의 정경이 되었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