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사업비 24조원 규모의 체코 신규 원전 사업에 한국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K-원전’의 경쟁력이 15년 만에 재확인됐다. 세계 수준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에도 국내외 탈원전 흐름에 밀려 한때 생태계 붕괴 위기에 처했지만, 체코 원전 수주를 계기로 본격적인 부활의 계기를 잡았다.
17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따르면 체코 원전 사업은 두코바니 및 테멜린 지역에 최대 4기 원전을 짓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 ‘원전 골리앗’이 잇달아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2021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중도 포기하고, 올해 1월 미국 웨스팅하우스도 조건 미달로 후보에서 제외되면서 한국과 프랑스의 맞대결 구도가 펼쳐졌다.
유럽연합(EU) 핵심 회원국이자 세계 2위 원전 강국인 프랑스는 ‘EU의 전폭적 지원’을 무기로 내걸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3월 EU 내 원전 추진 12개국과 ‘원전 동맹’ 공동 성명을 낸 뒤 체코를 3차례나 방문했다.
이에 한수원은 민관이 뭉친 ‘팀 코리아’를 꾸리고 가격과 기술, 공사기간 준수, 인허가 및 안보성 등 다양한 강점을 망라해 제시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정해진 예산과 기간에 시공을 마치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 역량과 체코 측 요구 사항을 모두 충족시킨 점 등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체코 원전 수주가 9부 능선을 넘으면서 한국형 원전 모델인 ‘APR-1400’의 유럽 수출 물꼬도 한층 확대될 전망이다. APR-1400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바라카 원전을 비롯해 신고리 3·4호기, 신한울 1·2호기 설계에 적용된 모델이다.
한수원은 앞서 유럽 수출을 위해 개량한 ‘EU-APR’ 모델로 2017년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 본심사를 통과했다. 2019년에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설계인증(DC)도 취득했다. 이번 체코 원전 입찰에선 설비 용량을 기존 1400메가와트(㎿) 규모에서 1000㎿로 낮춘 맞춤형 모델(APR-1000)을 제안하며 총력전을 펼쳤다. 한수원은 “2017년부터 매년 체코 현지 봉사활동을 통해 상생하는 기업 이미지를 만들려 노력했다”고 했다.
한수원과 함께 팀코리아를 꾸린 한전기술 한전KPS 한전원자력연료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등도 ‘원전 퀀텀 점프’ 계기를 맞을 전망이다. 체코 원전 사업에서 한전기술은 원전 및 원자로 설계를, 한전KPS는 시운전과 정비를 담당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자로, 증기터빈 등 1·2차 계통 핵심 주기기를 공급하고 대우건설은 시공을 맡을 예정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한국형 원전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이 확실하게 증명된 셈”이라며 “탄소중립에 올인하고 있는 다른 유럽 국가들로 추가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다만 체코 원전 사업은 내년 3월까지 세부 계약 내용을 조율하는 협상 과정이 남아있다. 현재 총 예상 사업비 24조원 규모의 원전 2기 수주를 확보한 한수원은 체코 측과 계약 금액 등을 놓고 협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정부는 한수원을 중심으로 ‘협상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협상 준비에 착수한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원전수출전략추진위원회’도 열어 후속 조치도 점검할 계획이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