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본연의 아름다움·선함으로 상대를 설득… ‘매혹의 작업’ 변증은 학문이자 기술”

입력 2024-07-19 03:04
알리스터 맥그래스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지난 2014년 한 유튜브 채널이 마련한 강연에서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복있는사람 제공

“내 중심에는 언제나, 영원히 계속될 끔찍한 고통이 있다. 세상 너머의 무엇을 찾고자 하는 고통이다.” 인간의 직관을 넘어서는 “고귀하고 무한한 무엇이자 지복(至福)의 환상”을 갈구하는 이 사람은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다. 불가지론자로 기독교 신앙을 비판한 그이지만 한편으론 ‘세상 너머의 무엇’을 찾지 못해 번민했다.

심정적으론 강렬하게 느껴지지만 정의하긴 까다로운 이 욕구를 러셀만 느낀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종교에 회의적이던 영국 시인 매슈 아널드는 이를 “애처롭고 부드러우며 눈물겨운 그리움”으로 표현했다. 독일어엔 이 욕구를 지칭하는 표현도 있다. ‘그리움’이나 ‘동경’으로 번역되는 ‘젠주흐트’다. ‘정의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는 무언가에 대한 갈망’을 설명할 때 쓴다.


분자생물학자이자 역사신학자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과학과 종교’ 분야 석좌교수를 지낸 저자는 이 현상을 변증학적으로 접근한다. 인류의 본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갈망이 ‘신앙의 접촉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이정표 삼아 회심의 길로 이끄는 게 변증가의 역할이라고 봤다.

책은 저자가 2004~2013년 옥스퍼드대 기독교변증센터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변증학 기본 개관서다. 과학과 신학에 정통한 과학신학자로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새로운 무신론’을 논박해온 그는 변증을 저평가하는 교회 안팎의 시각에 아쉬움을 표한다. “갖은 수단을 동원해 공격적으로 전도”하거나 “수사적인 방법을 연마해 논쟁에서 승리하는 것”쯤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적잖아서다.

저자는 변증을 “학문이자 기술”로 정의한다. 변증은 “신앙의 외부 비판과 씨름하며 인간 실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설명하고 기독교적 사상과 용어를 일상어로 번역하는 것”으로 영성과 신학 지식, 현대 문화와 지성계에 대한 높은 이해가 요구된다. 또한 기독교 본연의 진리와 아름다움, 선함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매혹의 작업’이기도 하다.

영국 작가이자 변증가인 GK 체스터턴과 CS 루이스는 기독교의 아름다움과 상상력에 매료돼 회심한 사례다. 한때 무신론자였던 이들은 기독교가 제공하는 ‘큰 그림’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적합하다고 봤다. 삶에서 겪는 여러 문제와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데 기독교의 내러티브만큼 개연성 있는 구조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부재한 신은 필요 없다”는 이유로 10대까지 무신론자로 지냈던 저자 역시 ‘성육신’ 교리에 감화돼 기독교에 귀의했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수동적 관찰자가 아니라 인간과 동행하는 동반자”라는 데 마음이 움직였다.

로마 제국과 유대 민중을 배경으로 출발한 기독교에 있어 변증은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필연적 과정이었다. 책에는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블레즈 파스칼, CS 루이스 등 교회사에서 변증에 탁월했던 이들의 철학과 논지가 상세히 담겼다. 미국 뉴욕 리디머교회 설립자인 팀 켈러 목사, 캐나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 등 현대에서 활약한 변증가의 사례도 풍부하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성으로 세상 만사를 설명하려는 근대적 합리주의는 저물었다. “윤리·종교·철학적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줄 수 있는 건 과학뿐”이라는 새로운 무신론자의 ‘과학주의’도 어느새 구시대 유물이 됐다. 저자는 “(새로운 무신론자들은) 이제 낡은 합리주의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며 “과학뿐 아니라 윤리 종교 정치 등 각 분야의 고유한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 인간은 더 깊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종교는 폭력의 원인인가’ ‘신이 있다면 왜 세상의 불의를 허용하는가’ 등 기독교를 둘러싼 주요 논쟁 주제 10가지에 대한 변증학적 답변도 담겼다.

저자가 반복해 말하는 건 “책을 참고해 자신만의 독특한 변증 기술을 연마하라”는 것이다. 각 상황에 맞게 익힌 변증 기술은 교회 밖뿐 아니라 공동체 내부에도 확신에 근거한 희망을 전할 수 있다. 신앙의 이유에 지성적 답변을 얻고자 하는 이라면 찬찬히 읽어봄 직하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