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76주년 제헌절이었지만 그 헌법을 만든 국회의 현주소는 딱하기 이를 데 없다. 22대 국회는 그제 기준으로 ‘87년 체제’ 이후 가장 늦게 개원식을 연 21대 국회의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5월 말 임기가 시작된 현 국회가 아직도 개원식을 열지 못한 건 ‘채상병 특검법’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문회’ 등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치 때문이다. 끊임없는 정쟁으로 민생을 도외시한 21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인줄 알았더니, 22대는 벌써 이를 능가할 조짐이다.
정치권이 상시적으로 부딪치는 건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가 가진 갈등적 구조 탓이란 지적이 많다.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에선 대통령과 이를 견제할 야당이 수시로 충돌할 개연성이 높다. 특히 대통령은 재선을 의식하지 않기에 야당과 국민 뜻을 세심히 헤아리지 않고 마음대로 국정을 운영할 소지가 있다. 이로 인해 여야가 대리전을 벌이고, ‘재의요구권(거부권)’ 등을 놓고 대통령과 야당이 직접 충돌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그간 정치권과 학계에선 권력 구조를 바꾸는 개헌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제헌절 경축사에서 “22대는 개헌을 성사시키는 국회가 돼야 한다”면서 2026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해 개헌을 이뤄내자고 제안했다. 우 의장뿐 아니라 그동안 ‘동물 국회’ ‘빠루 국회’ ‘쇠망치 국회’ 등을 거쳐간 다른 의장들도 한목소리로 개헌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우 의장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했으니 여야도 이에 응해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길 기대한다. 비단 권력구조 개편뿐 아니라 87년 체제 이후 사회·경제적 환경이 급변했고, 인공지능(AI) 시대를 비롯한 미래사회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개헌 논의는 필요하다. 권력구조 형태나 적용 시점 등은 다 열어 놓고 유연하게 접근한다면 여야 간 개헌안 합의가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