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살인과 다름없는 임신 36주차 낙태…생명 경시 통탄할 일

입력 2024-07-18 00:30

한 20대 여성 유튜버가 임신 36주차에 임신중절 수술을 받는 과정을 유튜브 계정에 올린 후 논란이 커지자 보건복지부가 유튜버와 수술을 한 의사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산부인과학회의 경우 조산아가 생존 가능한 임신 주수를 23~25주로 정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의도적 살해나 마찬가지다. 아직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차라리 영상이 조작이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해당 유튜버는 지난달 27일 낙태 영상을 올렸다가 파문이 확산되자 영상을 삭제하고 채널 이름도 바꿨다. 경찰은 “아직 (낙태) 사실이 확인된 건 아니다”라고 했다. 경찰에 살인 혐의로 수사를 의뢰한 복지부는 “2019년 낙태죄가 폐지돼 현행법상 적용할 수 있는 혐의가 살인죄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간담회에서 “자궁 밖으로 태아를 꺼낸 뒤 사망케 했다면 영아살해죄로 처벌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만 자궁 내에서 태아를 사망하도록 유도했다면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 36주차 태아를 의도적으로 낙태했음에도 처벌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것은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모든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특수한 사정 때문에 하는 낙태도 있으니 법을 현실에 맞게 고치라는 취지였다. 헌재는 보완 입법을 하라고 주문했지만 5년이 지났음에도 관련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다. 법과 제도의 공백으로 임신부와 태아가 고통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튜버는 영상을 올리며 ‘총 수술 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초음파 검사를 받고, 임신중절 수술을 받는 전후 과정을 영상으로 찍었지만 태아의 생명을 고민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임신 36주차의 임신중절은 그저 일상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브이로그’의 소재일 뿐이었다.

살인이나 다름없는 행위임에도 임신 36주차 중절 수술을 실시한 의료진이나 그 과정을 거리낌없이 영상으로 찍는 유튜버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땅히 엄벌해야 할 일임에도 이를 강제할 법과 제도가 미비하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정부와 국회는 서둘러 법·제도 정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아울러 생명 경시 풍조가 이토록 만연하도록 손 놓고 보고만 있었던 우리 사회 전반의 자성도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