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쁜 임대인에 혈세를 100억씩 퍼준 전세대책

입력 2024-07-18 00:31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대책으로 시행 중인 보증금 대위변제가 악성 임대사업자들 배만 불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 전세 보증금을 상습적으로 떼어먹다가 ‘악성 임대인 명단’에 오른 127명 중 절반이 넘는 67명이 여전히 등록 임대사업자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대신 HUG가 갚아준 전세금은 7124억원으로, 1인당 106억원이나 된다. 지난해 전체 대위변제액 3조5540억원의 20%나 되는 돈을 ‘나쁜’ 임대인들에게 퍼준 셈이다. 이들은 임대사업자로서 취득세·재산세·양도세 감면, 종합부동산세 과세표준 합산 배제 등 세제 혜택까지 누리고 있다. 악성 임대인으로 명단까지 공개했다면 정부가 임대사업 자격 유지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하지만 이런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보여주기식 행정’에 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 7월부터 진행된 전국 18개 시도경찰청의 수사 결과 전세사기 피해 규모는 2조3000억원으로, 피해자는 1만7825명에 달한다. 물론 이 같은 대규모 전세사기가 벌어진 건 문재인정부가 2020년 7월부터 시행한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전셋값이 폭등한 데 주로 기인한다. 집값과 전셋값 격차가 줄자 갭투자가 기승을 부렸고 임대 사업자들이 보유 거래세 감면 혜택까지 받아가며 무자본 갭투자로 수백 채까지 사들이면서 대규모 피해를 야기했다.

전 정부가 전세사기의 원초적 책임이 있지만, 수습을 소홀히 한 현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지난달 23일 127명이던 ‘악성 임대인’이 불과 3주밖에 안 된 지난 16일 현재 208명으로 64%나 늘어난 걸 보면 정부의 주먹구구식 대책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 아닌지 우려된다. 이런 식이라면 경매로 넘어간 피해주택을 낙찰받아 세입자에 임대하는 ‘든든전세 제도’도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일각에선 최근 서울 중심의 아파트 가격 강세 현상이 전세사기 피해로 인한 아파트 선호 현상의 영향이란 지적도 나온다. 근본적인 전세사기 대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