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밸류업… 기업들 ‘미래 사업 계획안’ 공시 난감

입력 2024-07-17 06:33

정부가 ‘밸류업’ 정책 일환으로 기업 스스로 중장기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자율 공시하도록 새 제도를 도입했지만 기업 호응은 저조하다. 재계에서는 시시각각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기업가치 제고 계획’ 관련 공시는 총 10건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6건은 향후 계획을 올리겠다는 예고 공시였다. 키움증권, 에프앤가이드, 콜마홀딩스, 메리츠금융지주 등 4개 기업만 기업가치 제고 계획안을 제출하며 ‘밸류업 공시’에 참여했다. 공시를 예고한 기업은 KB금융, 우리금융지주, 콜마비앤에이치 등 금융사와 중소·중견기업이다.

키움증권은 중기 목표로 별도 재무제표 기준 자기자본이익률(ROE) 15%, 주주환원율 30%,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23~2025년 현금 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50%가 넘는 주주환원율을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콜마홀딩스는 주주환원을 위해 2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겠다고 했고, 에프앤가이드 향후 5년 내 ROE 18%, 연평균 매출액 성장률 15%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5월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 최종안을 공개하고 지난달부터 기업들이 밸류업 계획을 공시하도록 했다. 기업이 중장기적으로 가치를 올리기 위해 어떤 사업 계획을 짰는지, 해당 계획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지 투자자에게 알려 ‘성장성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는 취지다. 다만 가이드라인은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시 여부를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대신 공시를 선택할 경우 1년에 1회 등 주기적으로 하게끔 권장했다. 공시에는 사업 현황과 실행 계획, 계획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자금 조달 방안, 계획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판단할 수 있는 현황 등을 명시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정작 기업들은 공시에 담을 내용을 구체화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기업 등 규모가 있는 기업으로서는 단기간에 기업가치를 제고할 중장기 전략을 세우기 어려울뿐더러 변화가 빠른 시기엔 이런 계회이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또 구체적인 투자 계획이나 자금 조달은 영업기밀에 가까운 내부 정보이기 때문에 공개를 꺼릴 수밖에 없다. 경기 침체나 업황 부진 등 대외 리스크가 돌발적으로 발생하면 ‘미래 실적’에 대한 예측을 기업이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혹평과 함께 허위공시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재계에서는 공시에 참여한 기업에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3일 ‘역동경제 로드맵’을 통해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늘린 기업에 5%의 법인세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등 공시 참여 유도 방안을 내놨지만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미래를 예측해 모두가 보게끔 선언(공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동력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