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 해외 유학생까지 ‘견제’

입력 2024-07-17 07:28
국민일보DB

각국의 반도체 인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국인 유학생이 많은 대학을 미국 정부가 견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규제가 인력 양성 단계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다. 중국 정부는 해외에 있는 중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대상으로도 파격적인 대우를 제공하며 기술 인재를 끌어모으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6일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공과대학 총장이 네덜란드 주재 미국 대사로부터 중국 유학생이 많은 데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에인트호번 공과대학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회사 ASML의 ‘인력 양성소’로 꼽힌다. ASML은 지난 5월 이 학교에 박사과정생 지원과 클린룸 건물 리모델링에 필요한 8000만 유로(약 1200억원) 기부를 약속했다. 학교에는 ASML 노광장비를 보관하는 실험실 건물도 있다.

미국의 견제는 ASML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초미세 공정의 핵심인 노광장비는 중국으로의 수출이 금지돼 있다. 반도체 장비 수입이 막힌 중국은 자체적으로 기술 개발에 나섰다. 지난해 중국 반도체 제조사 SMIC는 ASML의 기술을 사용해 화웨이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반도체를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ASML은 중국 직원이 기밀 정보를 훔쳤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중국은 높은 연봉과 주택 지원으로 해외의 반도체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젊은 연구자를 대상으로 수억원의 연봉에 주택까지 지원하는 ‘치밍 계획’을 운영 중이다. 해외 인재 2000명을 영입하는 ‘천인 계획’에 이어 해외에 체류하는 중국인과 외국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인재 유치 프로그램이다.

인재 유치는 곧바로 반도체 기술 발전으로 이어진다. SMIC는 자체 개발한 반도체 제조 공정 기술을 특허 출원했고,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자체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들의 올해 웨이퍼(반도체 제조용 실리콘판) 생산 역량이 15% 늘어나고, 내년에는 14%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평균 성장세인 6~7%를 웃도는 성적이다.

SEMI는 중국이 내년 전 세계 웨이퍼 생산 역량의 약 30%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제재로 수입이 막힌 중국이 반도체 자립에 상당 부분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