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부터 폭염이 내습하더니 장마도 길게 이어지고 있다. 열대지방의 무더위를 연상시키는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중이다. 에메랄드빛 바다, 푸른 산,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가 그리워진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곳 중 하나가 전북 부안의 변산반도다.
변산반도는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뒤 1988년 19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국립공원 중에서 처음으로 육상과 해상이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바닷가는 외변산, 산악 지역은 내변산이다.
외변산에는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해 이름 붙여진 채석강과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놀았다는 중국의 적벽강과 비슷하다는 적벽강이 있다. 부안 채석강·적벽강은 강이 아니라 변산반도 서쪽에 있는 해식절벽과 바닷가 일대를 가리킨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적벽강에서는 바다와 웅장한 적벽, 그리고 눈부신 노을을 두루 만끽할 수 있다. 깎아지른 듯한 거대한 해벽 일대는 주상절리와 페퍼라이트 등 다양한 지질은 물론 파도에 깎인 해식동굴 등 경이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페퍼라이트는 뜨거운 마그마나 용암이 차가운 퇴적물과 직접 접촉할 때 형성된 화산암과 퇴적암의 혼합 암석으로, 아름다운 무늬를 자랑한다.
적벽강 퇴적층은 채석강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화산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70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졌다. 조용하던 호수 퇴적물 위로 화산이 분출하고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지질구조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탄성을 자아낸다. 특히 붉은빛을 띠는 절벽은 해 질 무렵 더욱 영롱한 색감으로 신비로운 광경을 연출한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 꽃지해변, 인천 강화도의 석모도와 함께 서해 3대 낙조로 손꼽힌다.
적벽강에서 요즘 새롭게 주목받는 해식동굴은 ‘호리병 동굴’이다. 동굴 내부에서 밖으로 내다보면 실루엣이 호리병 모양이다. 호리병은 무협 영화 등에서 악귀를 가두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그 사이로 저무는 태양이 더없이 아름답다.
바로 옆은 채석강이다. 이곳도 파도가 빚어놓은 해식동굴로 유명하다. 동굴 안에서 바위 경계를 절묘하게 조합하면 전설의 동물 유니콘 모양이다.
호리병 모양의 동굴로 ‘굴바위’도 있다.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대불사에 차를 세우고 숲길을 따라 150m 정도만 오르면 도착한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에 천연적으로 뚫린 굴의 깊이는 30m쯤 되며, 높이는 약 8m나 된다. 굴이 끝나는 부분 중단에는 움푹 파여 있다. 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좁아진다. 생육신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한 곳이다.
굴바위로 들어가는 길 초입 우동저수지 건너편에는 비 온 뒤에만 쏟아지는 폭포가 있다. 선계폭포다. 비가 넉넉하게 오면 60m 높이의 폭포가 거대한 암봉에 내걸린다. 저수지 옆에 주차하고 200m만 걸으면 까마득한 폭포의 물줄기 아래 닿는다. 선계폭포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무예를 수련하던 중 뛰어내리면서 휘두른 칼에 바위가 길게 잘렸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비가 와야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폭포는 부안의 낙조 명소인 솔섬 인근에 있다. 솔섬을 바라보는 전북학생해양수련원에서 뒤로 돌아보면 멀리 투봉바위 능선에 거대한 절벽이 눈에 띈다. 비가 오면 수락폭포로 변한다. 직소천 공원에서 직소천 물 건너편으로 보이는 기암 안쪽의 깊숙한 곳에도 비 오는 날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벼락폭포’가 자리한다. 비가 내리면 협곡에 높이 50m쯤 되는 큰 큰 물줄기가 걸린다.
여름인데 해수욕장도 빼놓을 수 없다. 변산반도국립공원에 있는 격포, 변산, 고사포 등 부안 3대 해수욕장이 지난 5일 모두 개장했다. 특히 격포해수욕장은 대천해수욕장, 만리포해수욕장과 더불어 서해안 3대 해수욕장으로 꼽힌다. 1933년 개장한 변산해수욕장은 하얀 모래와 푸른 솔숲이 어우러져 백사청송해수욕장으로 불린다. 수심이 얕고 넓은 백사장에 오토캠핑장, 야영장, 노을바라기전망대, 비치가든, 노을쉼터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인기다. 고사포해변에는 변산반도국립공원이 운영하는 국립 야영장이 있어 캠핑을 즐기기에 좋다.
여행메모
적벽강·채석강은 썰물 때 접근 가능
백합 요리·곰소젓갈정식… 대표 먹거리
적벽강·채석강은 썰물 때 접근 가능
백합 요리·곰소젓갈정식… 대표 먹거리
적벽강과 채석강은 바닷물이 빠져야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www.khoa.go.kr)에서 물때표를 검색해 썰물(간조) 때에 맞춰 찾아간다. 두 곳을 한꺼번에 보려면 격포항 주차장보다 ‘수성당 주차장’이 편하다.
변산해수욕장에서는 ‘변산비치파티’라는 해변 파티 형식의 축제가 8월 2~4일 열린다. 축제에서는 국내 유명 댄서들의 축하 공연과 비치댄스 경연대회가 진행된다. 또 8월 15~17일 ‘변산 비치 시네마’라는 이름으로 하루 한 편씩 영화 상영과 감독·배우와의 만남 등으로 구성된 행사가 펼쳐진다.
당초 지난 6월 21~22일 예정됐다가 비 소식 등으로 연기된 ‘부안문화유산야행’은 8월 30~31일 부안군청 일원에서 개최된다.
부안의 먹거리로는 백합과 젓갈이 꼽힌다. 백합은 ‘조개의 여왕’이라는 애칭답게 도톰하고 뽀얀 속살이 탕, 찜, 구이 등 어떤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대표 주자는 백합죽이다. 곰소항 주변에 곰소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으로 담가 맛이 깔끔한 곰소젓갈을 한자리에서 다양하게 맛볼 수 있도록 젓갈정식을 내는 식당이 많다.
부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