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돌고 돌아 또다시 ‘김건희 여사 리스크’에 직면했다. 김 여사가 지난 1월 한동훈 당대표 후보(당시 비대위원장)에게 보낸 문자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블랙홀’이 됐고, 당정관계가 삐거덕거리게 된 배경에 김 여사가 존재한다는 정황도 다수 나오고 있다.
김 여사가 4·10 총선 직후 명품가방 수수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전적으로 제 책임”이라고 말했다고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가 10일 밝혔다. 그동안 친윤(친윤석열)계 인사들은 김 여사의 메시지 공개 이후 김 여사 사과 불발에 대한 ‘한동훈 책임론’을 제기해왔는데, 이와 결이 다른 발언을 김 여사가 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김 여사가 전당대회 국면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야권의 공세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한 여권의 정치적 부담은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총선 직후 거의 2년 만에 김 여사한테 전화가 왔다. 기록을 보니 57분 통화한 것으로 돼 있다”며 김 여사와의 통화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당시 여사는 ‘대국민 사과를 못한 건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고 했다. 자신은 사과할 의향이 있었는데 주변에서 극구 말렸다고 한다”며 “지금 친윤 측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당시 내가 여사에게 직접 들은 것과 180도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 영남 의원은 “김 여사가 여당 당원도 아닌 진 교수와 1시간 가까이 통화했다는 사실에 놀라거나 실망한 당원도 제법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여사 문자를 갖고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던 인사들이 제대로 되치기를 당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여사와 대통령실의 정치적 부담만 키웠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개된 김 여사의 메시지가 대국민 사과를 둘러싼 정치적 고려를 담고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김 여사가 명품가방 수수와 그간의 논란들에 대해 사과한들 국민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 후보 간 불화 이면에 김 여사 문제에 대한 입장 차가 있었다는 점도 확인되면서 향후 이 문제가 당정관계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야권의 김 여사를 겨냥한 공세도 거세지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19일과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청문회에 김 여사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또 채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의 개입 흔적을 찾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김 여사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여권 일각에서는 제2부속실 설치, 특별감찰관 임명 등 대통령실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계속 제기된다. 한 여권 인사는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그 정도의 움직임이라도 있어야 사람들이 좀 달라졌다고 보지 않겠냐”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해외에서도 영부인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 여론이 높다”며 “여권으로서는 더는 여사의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