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다섯 노인의 숙고

입력 2024-07-12 03:06

1990년 2월 8일, 일흔다섯을 넘긴 노인이 연속 강연에 나선다. 의학박사였지만 수도자의 길을 선택한 그는 어떤 지혜를 말해줄까. “저는 열매 맺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고 아직도 바닥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불편한 그의 자기 성찰은 이내 범위를 넓히더니 우리로 확장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붙어 기생충처럼 삽니다. 때때로 하나님을 사실상 오락거리로 여기기도 합니다.”

첫 강연 이후 항의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노인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는 복음을 일종의 ‘이상’(理想)으로 여기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는 따라도 대부분은 능력 밖이라며 포기하는 이상 말이지요.”

현실은 이상과 먼 실체다. 그렇다면 복음을 살지 못하는 건 능력이 부족한 인간의 잘못인가. 애초에 닿을 수 없는 이상의 잘못인가. “누구도, 심지어 성인조차 이 완전함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건 불완전함이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방향의 문제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노인의 말은 우리를 시메온 성인의 ‘초라한 오두막’으로 이끈다. 성인은 말한다. “늙어가는 이 팔다리에 하나님의 현존이 스며들었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니 이 초라한 오두막은 하늘보다 크고 넓어라.”

성별이나 젊고 늙음으로, 능력의 많고 적음으로 규정짓지 않는 매우 혁신적인 자기 이해다. 노인은 자기 안에서 일그러지지 않은 모습과 하나님의 형상을 보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흐릿한 빛과 어둠을 통해, 왜곡과 죄성을 통해, 약함과 우리에게 있는 모든 나쁜 것을 통해 더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십시오.”

왜곡과 죄성과 약함과 나쁜 것을 통해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좋은 예로는 초대교회 고해 예식을 든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한 회중의 응답이다. “예, 당신에 대해 책임질 것을 약속합니다.” 노인은 “공동체의 시금석은 서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이야기에 방점을 찍는다.

34년 세월이 무색하게 저자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생생하게 도착했다. 그는 강연 중 “몸 된 이의 고통을 보려 하지 않기에 교회교가 그리스도교를 압도한다”고 일갈한다. 현실을 톺아보면 이런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자꾸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좋습니다. 일단 두세 명의 작은 모임에서 시작합시다. 멀어짐과 거부의 장벽, 두려움과 증오의 장벽, 무관심의 장벽이 무너지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두세 명의 작은 모임이 이상을 향한 첫걸음이라면 우리도 용기 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해보는 거다.

장재령 목사(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