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9일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21대 국회 때인 지난 5월에 이어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2차 거부권 행사다. 대통령실은 “안타까운 순직을 더 이상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대통령실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순직 해병 특검법 재의요구안’을 윤 대통령이 재가했다고 밝혔다. 미국을 방문 중인 윤 대통령은 하와이에 도착한 뒤 전자결재 방식으로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지난 4일 야당 단독으로 특검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5일 만이다.
대통령실은 “어제(8일) 발표된 경찰 수사 결과를 통해 실체적 진실과 책임소재가 밝혀진 상황에서 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순직 해병 특검법은 이제 철회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해병의 안타까운 순직을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악용하는 일도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시 한번 순직 해병의 명복을 빌며 유족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대통령에게 ‘자신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는 프레임을 덧씌우려는 정치적 목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거부권 행사 건의 배경을 설명했다. 박 장관은 “이번 법률안은 지난 5월 정부가 지적한 위헌 요소들이 수정·보완되지 않고 오히려 위헌성이 더욱 가중된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재표결이 예정된 상황에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특검법 반대 ‘단일대오’ 유지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김건희 여사 문자 무시’ 논란으로 내홍을 겪고 있지만,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을 거란 전망이다. 거대 야권의 독주에 대한 여권 내 위기의식이 커졌고, 한동훈 후보를 비롯한 당권주자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특검법에 대해서는 ‘수용불가’ 뜻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난 3일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의원 단체 채팅방에서도 단결하자는 분위기가 대세”라고 말했다. 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초선들도 유상범·주진우·박준태·곽규택 의원의 필리버스터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일방적인 특검법 추진으로 ‘찬성표’에 기울었던 의원들의 반감이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찬성 입장이었던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일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김 의원은 “민주당 특검법안은 진실 규명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여권에서는 앞서 찬성표를 던진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외에는 이탈표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이날 안 의원에 대한 제명을 요구하는 징계안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한 중진 의원은 “자기 소신만 관철하려면 당론은 왜 존재하느냐”고 말했다.
구자창 신지호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