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나경원이 예견한 제2 연판장?

입력 2024-07-09 00:40

연판장(連判狀)은 두 명 이상이 잇닿아 서명하거나 도장을 찍는 문서를 뜻한다. 대개 힘 없는 집단이나 하위직 사람들이 주류에 저항해 단합된 힘을 보이기 위해 작성한다. 연판장 은 12세기 쇼군(장군)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막부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방 귀족의 세금 수탈과 횡포에 농민들이 연명해 억울함을 호소한 문서에서 유래했다. 연판장이 강자 눈엔 반역의 수단으로 치부된다. 따라서 주동자를 알 수 없도록 서명자 이름을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돌아가며 적어 사발통문(沙鉢通文)으로도 불린다. 한국 현대 정치에선 1960년 4·19 혁명 이후 젊은 장교들의 연판장 사건이 시초로 통한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와 군대 내 부패 문제를 지적해 주요 군 실세들을 물러나게 하려는 목적이었으나 사전에 발각됐다. 1999년엔 일선 검사들이 청와대 눈치를 보는 검찰 수뇌부에 항의하는 연판장을 돌려 법조계와 정계를 뒤집어 놓았다.

요즘 정치권에선 연판장이 정적 견제 수단으로 변질된 느낌이다. 지난해 12월 이낙연 전 총리가 창당 선언을 하자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이 반대 뜻으로 연판장을 돌린 것이 그렇다. 당시 연판장 참여 여부가 이재명 대표의 총선 공천을 무기로 한 줄 세우기라는 비판이 거셌다.

국민의힘에서 7·23 전당대회를 앞두고 터진 제2 연판장 사태도 마찬가지다. 친윤계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한동훈 후보의 윤리위 제소와 사퇴를 촉구하는 연판장을 추진하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비화했다. 흥미로운 건 지난해 제1 연판장 사태로 3·8 전대 출마를 접었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 출마하며 제2 사태를 예견하듯 발언했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친윤계 원희룡 후보를 겨냥해 “전당대회 되면 늘 줄 세우고, 줄 서고, 대통령실을 판다”며 “지금 진행하는 형국이 제2의 연판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나 의원이 족집게 실력인 걸까, 한국 정치가 그만큼 수준이 낮아진 걸까. 국민들은 언제까지 정치 막장 드라마에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가.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