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남자는 방씨 성을 가진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15개월에 내 품에 들어온 그는 15㎏이나 나가던 우량아로, 걷지도 못하면서도 엄청나게 먹었다. 나는 그를 위해 오리 궁둥이(아이를 안을 때 지지해주는 힙시트)를 구입해 허리에 두르고 다녔다. 마치 젊은 엄마가 된 것처럼 멋져 보였고, 그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다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졌다. 창피함에 눈물이 쏟아졌고,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골반이 내려앉았다고 했다. 그 후 오리 궁둥이를 버리고 아이가 스스로 걷도록 했다. 현재 그는 11살 40㎏의 날렵한 보디가드가 돼 나를 지켜주고 있다.
두 번째 남자는 손씨 성을 가졌다. 처음 만났을 때 25개월이었던 그는 애교가 많아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반짝이는 눈과 귀여운 행동은 주변 사람을 녹아내리게 만들었다. 말을 배우면서는 웃음폭탄 역할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5살이 되던 해 봄, 친아빠가 나타나자 그는 나를 떠났다.
이별의 아픔을 겪은 나는 그의 자리를 보며 숨이 막힐 것 같았다. 1년 반 후 그가 7살이 돼 상처투성이로 돌아왔다. 나는 그를 끌어안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러나 그의 상처는 씻겨지지 않았고, 나는 지쳐갔다. 폭력적인 행동과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함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심리상담소를 찾았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그는 나와의 생활을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예비중학생이 된 그는 오늘 아침에도 학교에 다녀오겠다며 뽀뽀를 하고 나갔다.
세 번째 남자는 고씨 성을 가진 남편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학교를 다니고, 나는 직장에 다녔다. 그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내 직장 앞 공원에서 내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밥을 사주니까 저녁을 공짜로 먹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2년쯤 지나 우리는 결혼했고, 두 딸을 낳았다. 남편은 여전히 자유로웠고, 마트에서 항상 본인 것만 사왔다. 딸들은 실망했지만 시간이 흘러 딸들이 커버리자 손씨 아이를 귀하게 여기며 귀가시간이 빨라졌다. 방씨 아이를 만나 두 아들의 아빠가 되어 행복해하는 남편은 아들들과 함께 목욕탕에 자랑스럽게 입장했다. 그는 아이들과 놀며 조금 늙어버린 모습이지만 여전히 활기차고 개구지게 생활하고 있다.
이렇게 다른 성을 가진 세 남자와 매일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며 나는 살고 있다. 가정위탁제도와 함께 만난 두 아들과 두 딸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견고한 공동체로 살아간다. 오늘도 나는 이 남자들 때문에 하녀같이 집안일을 하지만, 언젠가는 이 남자들에게 여왕 대접을 받을 것을 꿈꾸며 그들이 벗어놓은 양말을 세탁기에 넣어 돌린다.
이현정 은평구육아종합지원센터 보육전문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