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56년 1월 24일 충남 논산시 상월면 숙진리 농촌에서 한문학자 가정의 7남매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났다. 6·25 전쟁 직후 매우 어렵고 굶주리고 가난한 시기에, 그것도 시골에서 출생한 ‘흙수저’다. 어려서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쌀밥 한번 마음껏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과 상황을 불평하고 염려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모두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68년 논산 한천초등학교, 71년 대전 보문중학교, 75년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재수를 거쳐 76년 서울대 약학대 제약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들어와 넓은 세상을 보게 됐다. 직업으로서의 약사(藥師)를 넘어 약학(藥學)이라는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또 아가페 의료봉사 활동을 통해 내가 아닌 타자를 찾을 수 있었고, 사회와 소통하면서 보다 성숙한 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는 약물과 치료제 개발에 대한 깊은 관심이 학업으로 이어졌다. 1980년 서울대 대학원 약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해 82년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86년 2월 서울대 대학원에서 약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렇게 86년부터 충북대 약학과 교수로 부임해 35년간 봉직했다. 교수와 학자로서 ‘심혈관 질환 약물 개발’을 주제로 국제학술지(SCI) 논문 160편을 포함해 총 20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또 10권의 책을 저술했고 30편의 특허를 취득한 바 있다. 그리고 교수로서 지금까지 길러낸 제자는 약학 학부생 수천 명과 석박사 제자 50여명이며 이들 가운데는 10여명의 대학교수도 있다. 88년 9월부터 90년 8월까지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방문학자로 연구 활동을 수행했다.
충북대 약학대 학장과 대한약학회 부회장으로서 활동했다. 충북대 약품자원개발연구소 소장과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 부회장으로 봉사했다. 특히 한국의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 업무를 총괄하는 중앙행정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 제9대 청장을 역임했던 바 국가 기관의 수장으로서 조직을 개편하고 모든 구성원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역대 식약청장 중에서 ‘최장수 청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오늘날 식품과 의약품 관리 부문에 있어서 선진화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 중추적인 임무를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초대 이사장으로서 첨단의료복합단지 핵심연구지원시설의 건립공사 착공에서부터 준공까지 진두지휘해 신약개발지원센터 등 4개 핵심센터 시설을 완성했다. 그리고 대학에 복직 후 총장에 선출됐고 충북대 총장으로 재직했다.
이러한 공로가 인정돼 2012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고 2017년 ‘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인재경영 부문)’에 선정됐으며 2021년 최고 훈장인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또한 2002년과 2016년에는 각각 ‘과학기술우수논문상’과 ‘대한약학회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그리고 2018년 7월 5일 일본의 홋카이도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를 받고 그 대학교수와 학생들에게 ‘지구촌 시대 소통과 공존의 리더십’을 주제로 기념 강연을 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현재에 충실하면서 최선을 다해 왔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오늘날 결과들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 모두 하나님이 이루셨다고 고백한다.
정리=김동규 기자 kkyu@kmib.co.kr